나와 너, 우리, 그리고 남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by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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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항상 ‘나’의 상대방으로서의 ‘너’다. 동등한 주체로서의 상대방에 대한 무례함은 곧 ‘나’라는 주체에 대한 부정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곧바로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너’의 존재를 인정할 때, ‘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 한국인의 상호작용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 ‘나’와 ‘너’라는 상호주체의 만남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와 ‘남’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야만 가능하다. ‘남’은 상호작용의 상대방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질문이 무서운 것이다. ‘남’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 그러나 타인이 일단 ‘우리’라고 하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타인’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에게 절대 무례해서는 안 된다. ‘우리’라는 경계선을 넘어오는 순간부터 상대방은 ‘너’라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나’와 ‘너’라는 주체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성립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 ‘남’이 되는 순간, 어떠한 합리적 상호작용도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한번 성립된 ‘우리’는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서구인들과 달리 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너’에게 ‘나’는 정말 간까지 빼줄 만큼 잘한다. ‘우리 사이’에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p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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