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자화상을 그렸다.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사진첩을 뒤지고, 그리고 싶은 시간 속의 나를 찾아 몇 장을 모아 두었다. 첫 번째 그리게 된 나. 그때 내 옆에 있던 그 사람을 나의 사진을 보며 떠올린다. 그때의 그 공간과 시간과 느낌을. 나는 웃고 있다.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가 바라본다. 머리카락, 눈, 코, 입의 위치, 그것들의 조화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목에 목걸이가 걸려 있다. 십 년이나 잊고 있던 그 목걸이의 의미를 이제야 기억해낸다. '현재의 나'는 웃고 있는 '과거의 나'를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처럼 미소를 짓는다.
완성된 자화상은 사진 속 나보다 예쁘다. 머리가 알고 있는 단점들을 손이 제멋대로 수정한 모양이다. 어쩌면 그 시간과 공간이 나를 현실보다 예쁘게 보이도록 한 건지도 모른다. 연필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입술만큼은 색을 넣어 주고 싶었고 색을 입혔다. 결국 사진 속 과거의 나와는 닮지 않은 자화상이 되었다. 지금의 거울 속 나와도 닮지 않았다. 자화상 속 나는 누구일까.
두 번째 자화상을 그렸다. 예전에 프레데릭 프랑크의 <연필 명상>(위너스북, 2014)이란 책을 읽던 당시에는, 자화상을 그리려고 마음먹어도 좀처럼 엄두가 안 나던 일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나란 사람은 시동이 걸리는 데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첫 번째 그릴 때 참고했던 사진보다 몇 년 더 과거로 간 사진을 골랐다. 아마 주민등록증을 받기 위해 찍은 사진인 듯 싶다. 경직되어 있다. 이번엔 웃고 있지 않다. 내가 아는 나의 얼굴의 단점들을 모두 솔직하게 그림으로 담는다. 말로 표현하기조차 싫었던 단점, 미운 점들을 오늘은 왠지 창피해 하지 않고 손이 그리고 있다. 머리가 아는 나의 얼굴의 못난 점들이 모두 정직하게 그림으로 그려졌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솔직하다.
하지만 이상하다. 두 번째 자화상 역시 낯설다.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를 그린 것일까. 얼굴의 각 요소들은 분명 나의 단점마저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나 각 요소들이 모인 전체의 얼굴은 사진 속 얼굴과 다르다. 첫 번째 그린 자화상보다도 더 멀어져 있다. 나는 누구를 그린 것일까. 왜 나는 내 얼굴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내 머릿속 나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언제쯤 나는 내가 보이는 나를 그릴 수 있을 것인가.
나와 닮지 않은 자화상들을 몇 번이나 그려 나갔다. 어떻게 하면 웃는 눈을 그릴 수 있을까. 입 꼬리는? 눈빛은 어떻게 해야 하지? 오늘도 한참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참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를 나로 만드는 요소들은 나의 단점뿐만이 아니었다. 단점들만 솔직하게 그린다면 나를 닮은 나를 그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반대로 내가 보고 싶은 나의 장점들만 담은 그림을 그린다면 나를 닮은 그림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니었다. 단점과 장점이 서로 거미줄처럼 투명하게 이어져 나를 이루고 있었다. 각도에 따라서, 머리 스타일에 따라서, 표정에 따라서, 여러 조건에 따라 얼굴은 다르게 보였다. 조건. 그래 조건에 따라서다. 하나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늘 하나의 나를 찾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를 닮지 않은 여러 장의 자화상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일부만을 담은 이 그림들이 모두 겹쳐져서 나란 사람이 이루어질 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이렇게 나의 여러 일부분들을 겹쳐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멈추었던 일상의 시계가 다시 흐르고 있다. 시간의 물을 틀어서 흘려보내고 있다. 흐르는 물이 반짝인다. 그 물에 가만히 손을 넣고 물을 느낀다. 때론 차갑고 때론 미적지근하고 때론 뜨거워서 깜짝 놀라게 하는 그 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