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특정 시기에 특정의 말들을 고파할 때가 있다. 그 특정 시기가 입시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고 또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혹은 누군가를 잃었을 때도 있다. 그러한 각자의 특정한 시기에 고파하는 말들이 있다.
# 새가 알을 깨고 나오다
이 책은 불안한 미래에 대해 고민을 안고 있는 10대들을 향해 전하는 진로 멘토들의 글이다. 이 책의 대상은 10대들이지만 어른들에게도 멘토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멘토가 반드시 타인일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멘토가 되어 줄 수도 있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자주 내 옆에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살고 있던 곳은 나의 작은 세계였더라고. 나는 그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지. 그곳에서 배운 말, 그곳에서 배운 문화, 그곳에서 경험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p28)”
요즘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있다. 분명 어릴 때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읽었고 내용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는 요즘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렸던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다른 별로 여행을 다니는 것, 그리고 지구라는 별에 도착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곧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란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다. 익숙했던 가정, 학교, 부모의 품을 떠나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을 간다. 그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지만 그렇게 여행을 떠날 때 비로소 내가 있던 곳이 얼마나 작은 별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왕자에서 말하듯 그 사람의 내면보다는 숫자만 따지는 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보아뱀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더 시력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좁은 세상을 박차고 나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것의 의미가 그것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이 전부이고 그것만이 옳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칭찬이 고픈 사람들
정확하게 그 상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으니까. 수업 중 내가 한 학생들을 칭찬했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이 장난처럼 우리 모두 한 명 한 명을 칭찬해 주세요, 라는 요청을 했다. 평소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한 명 한 명 살펴보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은 요청이었다. 그렇게 출석번호 순서대로 칭찬을 마친 후 학생들의 표정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고 이후 수업에 대한 자세들도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수업을 어려워하던 학생들도 ppt 자료를 사진 찍으며 복습 자료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미 성인인 학생들이지만 그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칭찬이 고팠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성인이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 사람의 몫을 한다고 여길 법하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더 먼 미래를 향해 다시 학생이 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타인으로부터의 칭찬이 고팠던 것이 아닐까 싶다.
“네가 원석이라는 생각엔 변함없단다. (...) 남들처럼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한 보석의 길이 아니라 원석 그 자체로 밝게 빛나고 아름다운, 너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진심으로 응원할게.(p44)”
우리는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다. 우리 자신을 대신할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그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불변의 진리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우리는 참 자주 잊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삶이 힘들어지고 삶에 장애가 찾아오면 내 존재가 하찮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우리에겐 특정 시기에 고픈 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꿈은 언제나 동사의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막연하게 나의 마지막 직업은 가르치는 일이라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다. 사실 내 꿈들이 거의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그 꿈들이 내 상상과 달리 꽃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예상하지 못했다. 평생 이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고 내 마지막 직업이라 여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이름의 책을 갖고 싶다는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부딪힐 때가 있고 사랑하는 직업에서 좌절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으며 내 이름의 책을 위한 시간이 괴로울 때도 있다.
“자신의 꿈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밖에 없어.(p58)”
꿈은 명사형도 아니고 동사의 과거 완료형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꿈은 언제나 동사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 했다.
“자기 삶에 철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 네가 품은 철학은 네 가슴과 머리에 깃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삶의 방향을 정해줄 거야.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해 주지. 네 행동의 뒷받침이 되고 말이야. 네가 정한 철학, 그 어떤 기준은 네 삶을 변화시켜 발전하는 동기가 될 거야.(p62)”
꿈은 언제나 동사의 현재진행형이다. 죽는 순간까지 ‘완료’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꿈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주변에서 반대해서 라든가 사회적인 시선이라든가는 아직 내 안에 철학이 없거나 꿈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 서평의 마지막은 저자가 인용한 박용재 시인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이 시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구절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의 부피와 넓이, 깊이, 딱 그만큼이 나의 인생이라는 시인의 말을 곱씹고 곱씹는다.
“삶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결국 ’난 무엇을 사랑하는가‘로 귀결될 수 있지.(p117)”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모인 것이 곧 그 사람의 삶이다. 몇 번을 읽어도 수긍이 간다. 그리고 저자의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 그 사랑하는 대상 안에는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누군지 아는 힘을 가지는 게 곧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거든.(p175)”
“자신이 누구인지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니까.(p176)”
특정 시기에 특정한 말들이 고픈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해 외로움을 느끼는 것 또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타인에게서 사랑을 채우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을 떠올려본다. 힘내라는 말보다는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너무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나 자신에게 지나친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나를 오히려 꿈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