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May 19. 2021

김준의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

# 계속 글을 쓸 건가     


나와 비슷한 색깔의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된다. 처음 읽는 작가의 책도 그렇고 처음 본 사람도 그렇다.   

   

저자의 책은 처음 읽는 것인데도 초면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난 건, 눈이 아니라 귀다. youtube를 통해 가끔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을 듣곤 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귀로 만났다. 눈을 감고 가만히 이 글을 ‘귀’로 처음 만난 이후 ‘눈’으로도 보고 싶어져 책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귀로 들을 때도 그랬고 눈으로 만난 지금도 이 책은 마치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 부이나 글을 계속 쓸 거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나도 사람이라 가끔은 소용없는 일에 지나치게 애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럴 때 조용한 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죽기 직전에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을 후회할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오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계속 쓰지 않을 수 없을 때, 나는 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p29~30)”     


나는 나에게 가끔 묻는다. 계속 글을 쓸 것인가, 라고. 그러면 언제나 대답은 하나다. ‘계속 쓰지 않을 수 없다’, 라는 정해진 답이 돌아온다. 쓰고 싶다가 아니다. 쓸 수 밖에 없다, 이다. 왜냐면 나 또한 저자가 자신의 작가 소개에 쓴 말처럼 ‘글을 쓰는 순간 정밀해지는 기분을 애정’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 글을 쓰다 보면 삶을 꼼꼼하게 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 사진은 잘 찍지 않지만 삶의 순간들을 글로 찍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법한 일상의 사소한 행복들도 글자로 입력되면 행복의 빛깔이 훨씬 선명해진다. 소중한 사람과 나눈 사소한 대화 하나, 표정 하나도, 그 순간의 냄새까지 글로 찍힌다. 그 사람이 대화 중 목젖을 보일 정도로 활짝 웃던 얼굴도 여전히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글이 되기 전에는 사라지고 말 일들이 선명하게 내 안에 새겨진다. 그 새겨지는 순간이 나는 참 행복하다. 그러므로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필연적인 결에 이른다.      


# 세상에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숨을 한계까지 참고 있을 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숨 쉬고 싶다.’ 물속이 아니라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 누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는가. 상시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 매우 절실해지는 경험. 꼭 공기만의 이야기일까. 그것은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있겠다. 당연했던 모든 것들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 그러니 보통의 것들을 더욱 사랑할 필요가 있겠다.(p40~41)”     


눈을 감고 귀로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글자 그대로 숨을 참아 보았다. 글이 아닌 귀로 만났기에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이다. 저자의 말처럼 당연한 건 세상에 없다는 진리에 공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만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감사할 것도, 소중한 것도 배로 늘어난다.      


요즘 들어 주변에 아픈 사람이 늘어났다. 너무 무거운 병을 짊어진 이 앞에서 내가 건넬 수 있는 말이 없다. 위로의 말도 힘을 내란 말도 곁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그 무엇도 그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해줄 수 있는 말조차 나는 알지 못함에 마음이 아파진다. 당연하다 여기던 일상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이 들어간다는 건, 그동안 당연하게 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돌려주는 기간이라 생각한다. 검은 머리도, 튼튼한 다리도 날씬한 몸매도, 맑았던 피도, 탱탱했던 피부도 무엇하나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그제야 깨닫고 하나씩 하나씩 돌려주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삶에 돌려주는 것이라면 그나마 적응해 나갈 수 있으련만, 어느 날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찾아가 버린다면, 그 사람은 그 빈자리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그 빈 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 기적이 아니라 필연이다     


좋은 글을 만났을 때 다음에 볼 수 있도록 모서리를 살며시 접어 두듯이, 살아가면서 귀퉁이를 곱접어 둘 수 있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p50)”     


곱접어 두고 싶은 책 속 구절을 모으듯 나는 삶의 순간들을 모은다. 그 순간들을 모으는 방법이 나에게는 글이다. 언젠가 남편과 우리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우리의 만남을 기적이라 표현했다. 만나기 쉽지 않은 둘이 이렇게 함께 살고 있으니까 이건 기적이라고. 그때 그는 나의 말을 정정했다. 평소 낯간지러운 말은 하지 않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그가, 그날은 단호하게 정정했다. 기적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필연인 이유에 대한 부연 설명도 없었고 그저 기적이라는 단어가 틀린 거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 이후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필연이라고 말하던 그때의 단호함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순간들을 저축하듯 기록한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     


처음 이 책에 마음이 간 것은,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있는 것 같은 ‘나’를 보면서였다.

한동안 고장난 듯 멈춰있던 삶의 시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고 있다. 내 삶의 시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조금씩 꾸준히 멈추지 않고 가길 소망하지만 내 삶의 시계는 언제나 중간중간 휴식의 시간을 준다. 휴식이 끝나는 날은 온다는 걸 삶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휴식을 휴식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태우며 나를 괴롭힐 때도 사실 많다.      


그러나 그런 휴식의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 앞에서 투정보다는 감사함을 느낀다. 나에게 일이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처음 이 책을 듣고, 글자로 읽고 있던 도중에는 내가 지쳐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 나에게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너무 모든 걸 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내 등을 토닥여 주고 싶었다. 저자의 글은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책을 다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는 지금은 더 이상 지쳐 있지 않음을 느낀다.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랜만에 찾아온 이 빠른 삶의 속도를 감사함으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건 저자의 글이 주는 따뜻한 위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말의 무게, 글의 무게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