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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pr 26. 2021

말의 무게, 글의 무게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박경남의 <말의 무게>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건 책 낭독 듣기다.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가만히 누워 듣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글이란 눈으로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탓인지 귀로 듣는 글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익숙해졌고 보는 글과 듣는 글의 차이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눈으로 ‘보는’ 글이 ‘내가 나에게 말하는 마음의 소리’라면, 귀로 ‘듣는’ 글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같은 느낌이 든다. ‘보는 글’은 내 안에서 아래로 깊이, 깊이 내려간다면, ‘듣는 글’은 옆으로, 옆으로 확장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말의 무게     


사람을 잃는 것과 말을 잃는 것은 어쩌면 같은 무게일지도 모른다.(p40)”     


처음 이 책을 읽으려 했을 때는 사람들과의 말의 무게의 차이로 인해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지나치게 진지한 내 성격 때문인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을 하는 건지로 혼란해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말이 무게가 없는 것이라면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는 무엇을 진심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고민에 빠져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핵심은, 말을 잃는 것과 사람을 잃는 것은 같다고 할 정도로 말의 무게가 가벼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좋은 말로 순진해서, 라고 포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냥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된다.      


말은 인격이며,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고 그 마음이 표현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때론 그것이 당연함 일임에도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라도 법이든 말이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어디 부담스러워서 말 한마디 편히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할지도 모른다. 맞다. 정말로 말은 어렵다. 저자는 <한비자> ‘난언(難言)편’에 나오는 말이 어려운 이유를 인용하고 있다. 이 인용을 조금 쉬운 말로 정리하면 이렇다.       


말이 너무 화려하면 실속이 없고, 그렇다고 너무 정중하고 딱딱하거나 소상하면 주제에서 벗어나기 쉽다. 또 말수가 많으면 같은 말의 반복이 될 수가 있고 비유가 많으면 내용이 공허하거나 실용성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골자만 말하고 간략하게 말하면 말이 너무 거칠어서 화술이 부족하다고 하고 박력 있게 사람을 설득하면 건방지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사소한 부분까지 계산하며 말하면 쩨쩨하게 따진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상식적이고 남 듣기에 좋은 말을 하면 아첨한다 할 수 있으며 말발이 너무 좋으면 경박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전 등을 인용하며 고상하게 말하면 지나치게 현학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략 BC300년 경 쓰인 <한비자>라는 책 속의 이 이유가 오늘날에 읽어도 납득이 가는 걸 보면, 말이란 정말 어렵구나 싶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한 고민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이어질 고민이겠구나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말’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말이 어렵다고, 말로 인해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말의 무게를 견디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말의 무게를 견디는 것뿐이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가벼워지지 않도록 내 말의 무게를 지켜야 하고, 타인의 말의 무게에 대해서도 내가 감당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나와 다른 말의 무게를 가졌다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말의 무게는 (...) 어떤 마음가짐과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느냐에 따라 무게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p32)”     


타인의 말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무엇일까.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의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만으로는 나의 의문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의도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을까. 사실을 말했을 때 손상될 자신의 체면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 사람 안에서 사실을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냥 한 말을 왜 진지하게 받아들였냐며 오히려 나를 책망할 때, 나는 어찌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말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명확해야 한다당연히 그 말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또한 말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그렇다면 그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p58)”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믿음으로 채워진다. 그 사람과 나와의 신뢰를 통해 그 거리가 메워진다. 그 신뢰를 쌓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서는 책임이 필요하다. 책임이 없는 말들은 무게를 가질 수 없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들은 공허할 뿐이다.     


말의 무게글의 무게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말의 무게는 얼마냐고.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었을까?

나는 떠도는 말에 휩쓸리지는 않았나?

나는 내가 한 말을 실천했는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말을 했는가?(p109)”     


이 말의 무게에는, 내가 뱉는 말뿐 아니라 경청도 포함된다. 말이란 일방향이 아니다. 나의 말과 상대의 말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이어서 하나의 천, ‘대화’가 완성된다. 그러므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말의 무게에 대해 고민할 때 함께 돌아봐야 할 요소가 된다. 기분 좋을 때 하는 말뿐 아니라 화가 났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조차도 그 말은 내 마음의 표현이다. 감동까지는 아닐지라도 내 감정이 먼저가 되어 도가 넘은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말의 무게와 더불어, 글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가 김애란 작가는 글과 실제가 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투를 들으며, 글에서 느낀 그대로의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녀처럼 글과 실제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의 무게와 말의 무게가 같은 사람, 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 글 속에서도 말 속에서도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 글과 내가 하나인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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