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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pr 23. 2021

감사를 배우다

정재찬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꿈에 대하여      


나의 남편은 글을 읽지 않는다. 물론 내 글도 읽지 않는다. 그의 말로는 일부러 안 읽는 거라고 한다. 블로그 등에 남긴 내 글을 읽는 건, 마치 나만의 공간을 엿보는 것 같다며, 자유롭게 쓰도록 지켜주고 싶어서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하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쓰길 바란다고. 언젠가 내 책이 나왔을 때 그때 처음 읽는 마음으로 읽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응원이 고마우면서도 변명처럼 말했다. 아직 나는 깊이가 없어서 내 글을 쓸 수가 없어라고. 변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기도 한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삶에 대한 시선은 아직 깊이가 없고 좁다. 사람들에 대한 나의 판단이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은 아닌지 진정으로 경험에서 나온 지혜인지 분별이 안 될 때도 많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감정적이 되어 화를 낼 때도 많다. 나의 시선은 ‘아직’ 거칠다. ‘아직’이라는 단어를 남김으로써 앞으로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내 꿈에 대한 나의 작은 예의다.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 그런데 그런 것들가령 명사 교사는 정말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 교사는 정년까지도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어쩌면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는 게 내 인생의 꿈이고, ‘교사나 의사’ 따위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일지도 모릅니다. (p51~52)”     


사실 요즘 나는 꿈이 없다. 내 책을 갖는 것이 꿈이지만 꿈이라고 감히 쓸 수가 없다. 꿈이라고 쓰고 이루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실망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말한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여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다. 꿈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못해서 나는 꿈을 두려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물어본다.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글에 담아 그 글을 다시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글은 호흡이다.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이다. 어떤 이는 과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없어서는 살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할지라도 누구도 읽지 않을지라도 앞으로도 나를 위한 글은 분명 쓸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가 될지 알지 못한다. 나라는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 이 글은 계속될 것은 분명하다.      


마음에 대하여      


우리 마음이란 놈부터가 그리 녹록하거나 단순하지가 않습니다마음은 단층(単層)이 아니라 단층(断層)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p135)”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어렵다. 이 말은 내 마음이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저자는 말한다. 그건 당연하다고. 하나로만 이루어진 단층(単層)이 아닌, 지각변동으로 갈라져 어긋난 단층(断層)이기 때문이라고. 곱씹을수록 정말 수긍이 간다. 그나마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잔잔해져서 요즘은 조금 살 것 같지만 십 대, 이십 대 때는 내 감정을 파도라고 표현하곤 했다. 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슬픔이란 놈이 우리 인생의 기생충이라면 그 놈도 살게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놈도 숙주가 필요하기에 내 몸 안으로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 감기 바이러스라 해도 되겠군요기어이 앓아야만 사라지는 감기 말입니다.(p144)”     


슬픔에 대해 기생충, 감기라 말하는 저자의 표현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도 때도 없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나. 나는 그런 내가 싫을 때가 많다. 울어야 할 때와 울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내 눈은 자기 마음대로 눈물을 내보낸다. 고장 난 수도꼭지 같다. 슬픈 영화나 책을 보아도 울고 친구의 아픈 일에도 울고 남편이 힘들 게 고생하는 모습에도 마음이 아파 운다. 물론 그와 싸울 때도 속상해서 운다. 나에게는 보내야 할 슬픔이라는 기생충이 너무나 많은가 싶다. 평소 감기는 일 년에 한 번도 잘 안 걸리는데 이 눈물이라는 감기는 너무 자주 온다. 언젠가 저자처럼, 슬픔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거라고 여유롭게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삶의 문제들에 대해 의연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 이것이 삶의 깊이가 아닐까 싶다. 내 마음 그릇이 커지고 깊어질 때, 내 글의 깊이도 깊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사랑에 대하여     


발효는 기다림의 결과이듯사랑도 기다림의 미학입니다.(p77) ”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이 말이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가장 공감이 간다. 사랑에 대해 저자는 이런 표현도 한다.      


구속될 것을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사랑입니다선택은 책임을 동반합니다상대방의 자유를 구속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사랑이란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길들이고 길들여질 충분한 시간을 기울여서 이루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p220)”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을 선택했지만 그 결혼은 우리를 구속한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결혼은 왜 하는 것인지 의문도 든다. 결혼 초, 남편과 자주 다투었다. 성격은 물론 생활 패턴, 직업, 연령까지 너무 달랐기 때문에 맞춘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결혼으로 인해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난 그에게 미안함 마음마저 들었다. 하루는 다툼 끝에 당신에게 결혼은 구속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당장 바꾸지는 못하지만 맞추어 가겠다며, 결혼을 했으니 그에 맞게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기적인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사랑은 관계니까요자유롭고 아름다운 구속이니까요오랜 시간 서로 길들이고 인내하고 생각하며 책임져야 하는 것이니까요그래서 그대로 인해그대를 위해내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거니까요.(p223)”     


상대를 위해 나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 그것이 사랑이며 관계라는 저자의 말을 여러 번 곱씹어 본다. 곱씹을수록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이다. 그에게 자랑스런 아내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의 남편이 되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      


결혼생활은 분명 쉽지 않다. 몇십 년을 각자 살아온 두 사람이 발걸음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편하고 싶다면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잘 놀다 간다’고 말하며 세상을 떠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결혼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통해 나도 그도 서로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새로운 자기 자신을 만나고 있다. 자신만이 전부였던 그가, “이제는 가정이 있어서”, “가장이니까”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아직 우리는 길 입구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 혼자일 때보다 이 길은 더 넓고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음은 확실하다.      


나를 키워준 것에 대하여


돌아보니 인생은 나를 돌봐준 이와 내가 돌볼 이로 이루어진 돌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p105)”     


갑작스런 질병에 의해서든, 나이를 먹어서든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베풀며 살지 못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베풂이란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물질적으로 받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그 버스 운전사 아저씨에게, 택배를 받았다면 택배 아저씨에게, 라는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에게 도움을 준 모든 존재들에 대한 감사를 말한다. 그런 존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자신이 지금까지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은 나에게도 역시나 부족한 부분이다. 말로는 감사하다고 자주 말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한 적은 몇 번이나 될까.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은 아니었을까. 인생이란 나를 돌봐준 이들과 내가 돌보는 이로 이루어졌다는 저자의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이 문장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 문장을 내 안에 깊이 새기기 위해 스케치북을 펼쳐 그림을 그린다. 나의 뿌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뿌리의 힘으로 나는 곧게 하늘로 솟을 수 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나 혼자만으로 살아왔다고 믿었고 외롭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거만했던 것이다.     


알록달록 예쁜 빛깔의 사랑이 매달린 뿌리를 바라본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이라는 책의 제목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나에게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내 삶을 채우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꿈도 사랑도 관계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감사가 아닐까 싶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산 넘어 산이 찾아올 때, 막막할 때, 불평할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역시 갖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더 많은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베풀고 감사하지 못했음을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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