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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16. 2021

사랑 그리고 노력, 배송중입니다

#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중 가장 큰 삶의 과제는 사랑이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는 점, 책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예습할 수 없다는 점,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는 한, 잘못된 걸 사전에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매번 처음이라는 점.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찾은 이유다.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고, 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며, 우리의 사랑,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나 관계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어느 정도 배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이 ‘어느 정도’의 지식들이 우리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였던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부부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지식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았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와 그와 부부가 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는 서로를 만남으로 인해 또 다른 '나'가 된다. 그러므로 각자였던 시기의 서로의 '나'에 대한 지식들은 다소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그 안다는 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순간들도 많다. 혹은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뿐, 사실은 모르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때도 있다.      


#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     


한때 구직 중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시간을 주고 싶다고. 내 책을 가지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나에게 주고 싶다고.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책 쓰는 일에 시간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년까지 보장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며 기댈 수 있는 어떤 곳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그는 오로지 나의 꿈 하나만을 응원하며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내 글을 읽지 않는다. 내 글 속에는 숨바꼭질하듯 그가 들어 있음에도 말이다. 그는 일부러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리 읽어버리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라면서. 그에게 있어 나는 이미 책을 출판할 것이 분명한, 예정된 사람이기에 그날을 위해 읽지 않는 것이라고 변명처럼 말한다.      


그는 글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미안하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말은 글자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말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가 말했던 적이 있다. 글을 믿고 글에 의지하며 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  글은 그에게 저 먼 나라 이야기임에도 그는 나의 글을 응원해 준다.

   

#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몰라’다. 이 말을 들으면 넌 영원히 알 수 없다, 넌 아직 삶을 몰라, 라면서 나를 낮게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도 없다.      


책 속에서 배운 교훈들과 내 머릿속 이상들은 ‘실제’ 결혼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부서지고 깍이고 다듬어지고 있다. 헤지고 있다고 쓰려다 ‘다듬어지고 있다’고 쓴다. 헤지는 것이라고 하면 언젠가 닳아 없어지는 것이겠지만 이건 다듬어지는 것이기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애 때는 좋은 것만을 주고받던 관계였는데 같은 호적 안에 들어온 이후 우린 서로에게 상처‘까지’ 주고 받는 관계가 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놀라움과 함께 실망, 그리고 반성을 하게 된다.      


나 자신에게 항상 엄격한 나는, 그 엄격한 잣대를 그대로 남편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에게는 그 잣대가 지나치게 날카롭다는 걸 만난 지 3년이 넘어서야 이제 알게 된다. 내 잣대에 그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정말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음을 처음 알게 된다.     


# 노력한다는 것에 대해     


오래전부터 ‘노력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노력해왔다고 믿었는데 결과는 노력하지 않았음이 되었을 때, 아마 처음 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나의 그 동안의 행위들은 노력이 아닌 무엇이었던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아직도 이 ‘노력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결과가 수반되지 못하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방법론을 모르겠다.      


택배 배송조회처럼, ‘결제완료=결심완료’, ‘배송 준비중=노력 준비중’, ‘배송중=노력중’이라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표시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송완료=노력완료’라고 그 결과까지.

이 ‘노력’조회로 본다면 나는 ‘결심완료’단계다. 아직 준비중 단계도 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에 놀란 상태다. 몇 십 년동안 내가 나를 향해 들이댔던 이 잣대가 이렇게 엄격하고 날카로웠는지 처음 알았다고 할 정도의 충격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상품(노력)을 준비해야 할까. 남편에게는 ‘노력할게’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 상품(노력)이 준비되지 못했으니까. 어떤 상품(노력)을 준비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단계니까.    

# 연습이 필요하다    

 

법률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휴, 2010)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변화하는 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연습이 바로 수행입니다.(p264)”     


당장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노력’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연습’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완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완벽으로 내몰던 엄격함도 내려놓아야 타인에 대해서도 부드러워질 수 있다.      


완벽함에의 집착은 팽팽하게 당겨진 실과 같다. 자칫 끊어져버릴 수 있다. 완벽에 대한 나의 집착은 삶의 단계에서 항상 나를 포기하게 만들곤 했다. 느슨한 실을 용납하지 못했기에 당길 수 있을 만큼 잡아당겼고 그 실에 손이 베이고 있음도 모르다 손에 상처가 나고 피가 난 후에야 깨닫는다. 하지만 실은 결국 끊어지고 만다.


바뀌고 싶다. 다름 속에서도 내 꿈을 응원해주는 그.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 사과하고 보듬고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를 위해, 그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나는 바뀌고 싶다. 나이 든 만큼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 커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싶다’들이 언젠가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게 되어 ‘배송(노력) 준비중’이 되고 ‘배송(노력) 완료’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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