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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ug 16. 2021

홍성원의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인공지능이나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살아있는 존재 중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매순간 계속해서 변화한다. 사회 또한 그 변화하는 것들에 의해 매순간 변화하고 있다. 매일 조금씩 새로운 생각들이 나오고 그 생각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현실화하고 그 현실화된 무언가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그것들을 새로 익혀야만 한다.      

오늘날뿐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는 새롭게 나왔고 그 무언가는 대개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이 얻은 편리함으로 인해 누군가는 자신의 일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왔을 것이다. 이 ‘생각하는 기계’의 문제는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은 기계를 고안한 순간 기계의 환경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p71)”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순간, 인간은 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우리의 자리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이 아니면 안 되는 것그것이 무엇인가     


놀라운 변화를 보이고 있는 인공지능의 발달.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만의 영역은 어디에 무엇으로 존재하는가?(p72)”  

   

사실 저자의 이 물음은 삶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각자 고유의 존재로서 부여받은 이 삶을 통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업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에 대해서도 그렇다. 나와 비슷한 학력과 경력,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왜 내가 당신 회사에서 일하기 적합한 사람인가를 설득하는 것이 면접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성 중에서도 왜 내가 당신에게만 특별한 한 남자, 한 여자가 되는가를 설득해야만 하는 것이 연애이고 사랑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이와 다른 나만이 가진 무언가를 나 스스로에게 알게 해 주는 것, 스스로가 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나의 삶에서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가 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존재의 의미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싶다. 그것이 나의 삶의 과제다.     


 이제부터는 서서히 기계로 대체되어 가는 자신의 일자리에서 다른 이들보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우월한 일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p107)”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우월한 일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효율적인 측면에서 인간은 기계를 이기기 힘들다. 그건 기계의 장점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타인의 장점에 기죽어 있고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지 못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술력은 상상력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상하지 못한 것은 기술이 될 수 없다. 상상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하지만 기술은 그렇지 못하다. 단계를 맞춰 발전해야 하는 것이 기술이기에 우리에게는 기술의 발달에 대응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고 저자는 힘있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업종업무가 미래 어떻게 변화할지 타진해봐야 한다그 변화에 발맞추어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지 정해진다.(p89~90)”  

   

아무리 기계기술이 진보해도 인간의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변하는 것은 ‘일의 형태’이다. 즉 기계가 대체하게 되는 것은 직무이지 직업이 아니므로 일하는 방식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p87)”고 저자는 말한다.      


이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제 개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기능적 기술이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일을 왜 해야 하지?’라는 사고력이다.(p13)”     


새로운 변화보다 익숙한 불행과 불편을 선호할 때가 많다     


생각의 폭과 깊이에 따라 일의 결과는 달라진다생각의 힘은 정보의 양에 따른 지식이 아니라 생각을 운용하는 지혜에서 나온다.(p189)”     


정보나 지식의 양은 더이상 큰 의미가 없는 시대다. 굳이 외워야 할 것들이 이젠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에는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가가 지식인의 한 기준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자신만의 하나의 결론의 도달하는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이 바로 ‘지혜’다.      


그리고 저자는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일하는 이유를 되새기고 의미를 깨달으라고 말한다. 이유를 알 때 목표가 정확해지고 그것에 도달하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p142)”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힘즉 철학은 삶을 바꾼다.(p195)”     


멋진 말이다. AI 시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시대건 사유하는 힘은 삶을 바꾼다고 믿는다. 분명 생각하는 삶은 괴롭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이것이 최선인가를 묻고 반성하고 다시 달리고 멈추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냥 남이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한 번뿐인 이 삶의 소설을 내가 작가가 되어 써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량이 늘어나면 인간은 생각을 멈춘다생각하는 힘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줄이고 사유하는 행위를 늘려야 한다.(p189)”     


시대는 빠르게 변화해서 더이상 정보의 양이나 지식의 양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임에도 여전히 학교에서는 누가 더 많이 ‘외웠는가’가 우수함의 기준이 된다. 가르치는 방식도 여전히 얼마나 더 많이 ‘주입하는가’이다. 그런 가르침 속에 익숙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오고 어른이 되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라’는 말을 듣는다. 참 많이 당황스러울 게다. 온갖 매체에서도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입에 떠 넣어주는 식으로 모든 것을 조리된 상태로 만들어 준다. 끊임없이 먹지만 피와 살로 남는 것은 없다. 질문을 던지면 자신만의 대답을 하기보단 피하는 게 더 익숙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사람이다. 철학이나 사유는 특정인의 취미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특권인 것을. 우리는 아마 익숙한 불행과 불편에 길들어진 것 같다.    

 

사유하는 힘은 삶을 바꾼다     


저자가 우리에게 던진 해결책은 한가지다. 생각하라, 그것이다.  

    

나에게 일과 일터는 어떤 의미일까?”

내 삶의 여정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기계와 함께 일해야 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미래의 직업의 변화는 어찌보면 명확하다. 정형화된 일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위험하고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는 기계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투자 대비 효과가 더 좋은 일꾼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미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10년 뒤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20년 뒤에는지금 떠올린 역할이 그 시대에도 존재하고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확신하는가?(p99)”     


사실 새로운 도전의 불안감보다는 익숙한 불행과 불편이 편하다. 새로운 변화는 인간을 주저하게 만든다. 익숙한 불행과 불편을 감내하면서 늘 해오던 방식대로 일하고 행동한다. 마치 잘 세팅된 기계나 잘 훈련된 동물처럼.(p232)”     


이 익숙함에 얽매여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그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영원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신혼부부와 30~40년 이상 함께 산 부부 중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쪽은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가 아닌 결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혼부부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함께 오래 산 부부들은 서로를 ‘안다’고 굳게 믿으며 함께 살아온 시간 동안 변화한 상대방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원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영원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 변화를 온몸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영원한 직업, 영원한 사랑을 원한다면 계속해서 변화에 맞추어 새롭게 노력해야 한다. 시대의 요구를 알고 받아들일 때 영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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