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Sep 27. 2021

황시투안의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

사실 나처럼 문제가 생기면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찾으며 자신을 책망하고 마는 사람에게 이 책의 제목은 가혹하다. 또 내가 잘못이란 것인가? 라고 좌절하게 만든다. 아니다. 오해하면 안 된다. 나의 ‘탓’으로 모든 일이 잘못되었다는 비난의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르친다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며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자신을 다치게 하는 법을 가르친다.(p250)”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위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포인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다. 나 또한 상대의 말로 변화되지 않는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자기 자신 또한 변화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관계의 문제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최선의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책 속의 여러 주제 중 인상적이었던 ‘자유, 감정, 용서, 자신감, 신념,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자유     


우리는 왜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이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유가 없다, 구속당했다, 숨 막힌다고 느낄 때가 있다. 결혼이나 회사라는 조직으로 인해, 혹은 강압적인 부모/가족 등으로 인해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각이란 나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다나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으면 자각하게 되고자각할 줄 알면 자율성을 갖고자율이 있으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그리고 자기 행동에 책임질 수 있으면 남에게 영향을 주거나 피해 주지 않고남에게 피해 주거나 영향을 주지 않으면 우리도 구속받지 않는다.(p40)”     


자각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모든 행동 이면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보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자유를 원한다고 결혼을 회피할 필요가 없고협력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p41)”     


자유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면 위의 두 문장이 도움이 될 듯 하다. 즉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유로운 상태라는 뜻이다. 다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는 걸 선택했다고 끝은 아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자신의 선택이 옳음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자유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거나, 선택을 통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핑계를 대며 비겁하게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언제나 자유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자유는 누군가가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생각도 든다.   

  

감정     


감정에 관한 여러 기술들을 책 속에서 모았다. 여러 문장들에 마음이 멈추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음 문장들이다.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각각의 감정이 그 나름의 가치와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p107)”     


감정을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p49)”     


보통 책들에서는 ‘감정을 존중해라’, ‘감정을 잘 들여다봐라’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왜’가 없었다. 왜 존중해야 하는가, 왜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다. 이 의문이 필요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감정들은 모두 ‘그 존재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정은 ‘올바르게 다루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감정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잘 다루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게 된다. 만약 잘 다루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감정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다. 나의 이런 불안이 기우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다음 문장을 통해 저자는 다시 나를 안심시킨다.     


감정은 양면적이어서 어느 한쪽을 억압하면 다른 한쪽도 똑같이 억압당한다인생에 생기가 없어지는 것은 너무 깊게 억눌렸기 때문일 수 있다.(p52)”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배운 것 중 하나가, (내 나름대로는 나이 들어 배운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다) 이 세상에 좋은 것만 취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점이다. 즉, 장점이 있다면 그와 똑같은 크기로 단점이 따라온다. 사랑하게 만든 장점이 미워하게 만드는 단점이 된다는 뜻도 된다. 감정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슬픔을 허락하지 않으면 큰 기쁨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영악하게 좋은 점만 취할 수 없는 게 삶이란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사람들이나 나 자신에 대해 관대해진다.    

   

다만 감정은 단순히 잘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만으론 끝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다. 내 자신의 감정 자체를 제대로 알기도 어려운데 이게 타인의 감정까지 뒤섞이게 되면 그야말로 좌절하게 된다. 슬픔은 슬픔의, 무기력은 무기력의 이름표를 달고 알기 쉽게 나타나 준다면 그나마 편할 텐데, 슬픔, 무기력의 내용물이 분노나, 화라는 껍데기를 덮고 나타나면 그 사람의 그 내용물을 알아보기가 너무 어렵다. 최악의 경우, 그 내용물을 충분히 알아볼 시간조차 얻지 못한 채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말 수도 있다. 열등감의 내용물이 전혀 다른 껍데기를 덮고 나타난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 자신을 보호해 줄 마음의 선크림이 늘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감정이 없다면 조금은 살기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다양한 색깔을 가진 감정이 있기에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렵고 사람이 어렵다.    

 

용서     


용서에 관해서는 참 많은 책들이 다루고 있다. 결론 또한 대개 비슷하다. 타인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니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용서하라, 아마 대개 이런 내용일 것이다. 이 책도 그 내용 자체는 비슷하다. 비슷하다는 건 그게 진리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다만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용서에 관한 설명보다 가장 납득가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가슴에 새겨 둔다면, 누군가를 용서하기 더 쉬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길을 가다가 미친개에게 물렸을 때 개가 바뀌기를 바랄 것인가미친개는 그저 미친개일 뿐이다아무리 미워한다 한들 개에게 물린 상처는 여전히 선혈이 낭자하고 낫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상처를 닦고 광견병 백신을 맞으며 미친개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한 후 상처가 계속 몸에 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개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상처받은 쪽은 미친 개가 아니라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p57)”     


저자는 우리에게 억지로 용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를 입고 선혈이 흐르는 곳에 얼른 소독약을 바르라고 말한다. 이 소독약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하는 행위일 뿐이다.  

    

자신감      


요즘 내 삶에 꽂힌 문장 중 하나가 ‘증명해야 한다’는 표현이다. 나의 선택의 옳음을 증명해야 하고 나의 행복을 증명해야 하고... 이렇게 적다보면 멍해진다. 이 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다.      


돈 많은 사람은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자신감도 마찬가지다그래서 잘난 척과시오만은 자신감 부족의 표현이다.(p99)”    

 

있음이 ‘당연한’ 사람은 그 있음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있음이 ‘당연하지 않기’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증명하는 데 쓰고 마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증명해야 한다고 느껴왔던 것들은 어쩌면 ‘없음’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무언가, 내가 해낸 어떤 업적으로 나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면 가진 무언가가 사라지거나, 업적의 높고 낮음으로 자신의 자신감은 잃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감은 그렇게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믿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신감이다. 이 말을 저자는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외적인 것을 잣대로 삼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무조건적인 주관적 믿음에 근거한다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감이다.(p99)”     


무조건적이고 주관적인 믿음, 그 믿음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면 더 이상 증명하기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고 그 에너지를 더욱 유익한 곳에 쓸 수 있게 된다.  

    

신념     


저자에 의하면 신념이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 즉 신념의 차이가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내 안의 어떤 신념이 오늘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는지어떤 생각이 이러한 곤경에 빠지게 했는지 자문해 보자.(p122~p123)”     


이 문장은 조금 가혹하긴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실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즉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다. 물론 성형이나 피부관리를 통해 감출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행동이나 말투 등은 속일 수 없다. 그래서 참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신념이 행동을 결정하고행동이 결과를 결정한다거꾸로 말하면오늘 삶의 현주소는 과거 행동의 결과이며그 행동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뒷받침하는 신념이 있다.(p122)”     


현재는 과거의 결과라는 사실은 참 무서운 말이다. 자신의 옳음이 정말로 옳은지 끊임없이 곱씹고 의심하고 검토해야만 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것이 정말로 나의 최선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면 현실 자체도 인정해야만 한다. 그 현실이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할지라도 그게 나의 선택의 결과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인정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사랑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먼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는 비교적 어렵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버리면 된다. 먹지 않는 음식이 냉장고를 차지한 지 오래다. 아깝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먹겠다고 남겨두었는데 아무래도 먹지 않게 된다. 고민하다 고민하다 결국 버리기로 결정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으며 생각했다. 가장 쉬운 건 버릴 수 있는 관계라고. 15년 이상 된 친구 둘이 싸운 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간다. 15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지만 상대가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상 평생 보지 않아도 된다고 각자 말하고 있다. 팽팽하다. 어쩌면 이 둘은 불편한 감정 문제를 해결하는 어려움보다는 ‘버리는 편함’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회사처럼 언제든 버려도 되는, 버릴 수 있는 관계의 문제는 그나마 편하다. 하지만 버리기 어려운, 혹은 버릴 수 없는 관계는 해결하지 못하는 한 계속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다.      


사랑에도 방법과 사랑할 에너지가 필요하다어떤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일정한 업무 능력을 가져야만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쉽지만상대방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랑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이것은 서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사랑은 아름답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랑은 종종 둘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다이 사실을 깨닫고 사랑을 위해 성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p180)”     


사랑에 관해 성경과 같은 위치에 있는 책이 나에게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이 책은 1956년 쓰인 책으로 한국에 소개된 건 70년대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요지는 이 책과 같고 간단하다. 사랑도 기술처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빠진다고 생각하며 노력하고 배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지혜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     


배우자가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까?(p178)”     


사랑에 관한 저자의 생각 중 마음이 머문 문장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에게 주는 것이기에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수반되는 불안이나 불신도 결국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서, 사랑의 언어가 서로 다르기에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신형철 평론가가 자신의 책에서 말한 다음 문장은 역시 옳았다. 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역시 현명하다.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작가의 이전글 섬네일 강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