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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Sep 08. 2021

섬네일 강자

유튜브 등이 일상에 스며들면서 섬네일이란 단어도 친숙해졌다. 섬네일만 잘 찍어도 조회수는 어느 정도 보장되는 듯 하다. 이 섬네일이 인간으로 치면 첫인상이 될 수도 있고 책이나 글에 비유하면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용에 비해 섬네일만 거창했다면 어그로(aggro) 끌었다고 비난까지는 아닐지라도 속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어그로일지라도 조회수가 나왔고 사람들이 끌려왔다면 그것 또한 일종의 성공일 것이다.


나는 이런 어그로, 보고 싶게 만드는 섬네일과 친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면 돈은 자연스럽게 내게로 온다고, <나의 직업은 부자입니다>(토미츠카 아스카, 리스컴, 2021)라는 책 속에 쓰여 있었다. 부자되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은 물론 유튜브 강연은 셀 수 없이 많다. 다들 주옥같은 말을 하고 각자 고유의 의견이라 주장하지만 그 말이 맞기도 하고 사실 어떤 면에서는 공통된 줄기도 있다. 아마 모든 책들의 내용도 또한 그러할 것이고 진리라는 것 또한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진리라는 것 자체가 모두의 진리가 아니라 나의 진리인 것이니까. 각자의 진리를 찾아 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라 여기는 것들을 듣고 읽으며 그게 나의 진리인가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면 자연스럽게 돈은 나에게 들어온다는 문장을 읽은 후로 묘하게 그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맞는 말이고 그러네, 그러네, 했다. 그러나 내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느낌에 약간은 좌절감도 느끼게 한 문장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는 아마도 내 안에서 꽤 오랫동안 무시하고 살아온 개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남들과 나는 다르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 그런 생각으로 나를 지켜왔는데 나를 지켜온 이 가치관이 사실 나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남들을 보면서도 나와 남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면서 남들이, 세상 일반 사람들이 향하는 가치관에 맞추는 것. 하.. 역시 나는 그게 어렵다. 


부자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해 본적은 없지만 오래 전 예능인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농담처럼 던진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돈 많은 사람과 정 많은 사람 중 어떤 사람과 친구하고 싶냐는 질문에, "돈 많은 사람이 정도 많더라구요"라는 말이다. 적은 돈으로도 정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돈이 있을 때 그 마음(정)은 분명 더 확실히 전해진다. 손편지보다는 생일 케익하나가 더 기쁜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까. 손편지도 한 두 번이지, 라고 말할 테니까. 나 하나만을 생각하면 딱 필요한 만큼만 벌고 그렇게 살다가도 후회할 건 하나도 없지만 나 이외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생각하면 정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씁쓸해진다. 한정적인 돈 안에서 배분해서 살기 위해서는 내로라하는 부자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부가 필요함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부자가 되어야 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려도 나를 위한 글이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이 개인적인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수많은 광고들과,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클릭하는 주제로 글을 올려야 한다는 것, 나는 그러한 것에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것, 그게 현실이다.


오래전에 아는 언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언니는 나이를 먹으면서 '타협'을 배웠다고 말했다. 고집이 센 자기 자신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과 타협해야 살기 편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나는 젊었다. 언니의 그 말이 포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언니의 그 말이 지혜로 들린다. 고집을 부려도 그게 통할 때도 있지만 고집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때가 있고 세상을 살기에는 확실히 자신의 가치관이니 의사니 그런 것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나를 지우는 게 편할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옳고 적당히 부지런하고 적당히 게으르고. 아마 이런 타협의 지혜를 나는 아직도 배우지 못한 듯 하다. 이것이 오랫동안 나를 부와 멀어지게 했던/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을 또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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