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Nov 12. 2021

한지우의 <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대학원 시절의 지도교수님이다.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주셨지만 그중에서도 자주 강조하셨던 것이, 비전문가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안다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어려운 전문 용어를 늘어놓으면서 못 알아듣는 것은 듣는 이의 지식이 부족해서라는 권위적인 글, 말을 항상 조심하라고 강조하셨다.  이 책이 그렇다. 인문학 전공자이자,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는 저자이기에 이러한 글이 가능할 것이다.      


요즘 앞다투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놓고 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예측 가능한 한 가지는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제는 간단하다. 인공지능, 로봇 등의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 AI 시대에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공지능은 의료, 교육, 서비스, 여가 등 인간 생활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 ‘앞으로 사라질 직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언급되고 있다. 무인점포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쉽게 와닿을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보였던 서비스업종까지 기계가 들어오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이것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일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철학자들은 노동이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삶의 의미와 정체성소속감을 부여하는 매우 중요한 인간의 활동이라고 여깁니다. (...) 원하지 않을 때 강제로 쉬어야 하는 휴식은 진정한 휴식이 아닙니다이럴 때 인간은 존재의 이유와 삶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p146)”     


일은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목적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을 통해 인간은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고 존재의 의미, 자신의 가치, 정체성을 느낀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살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 도래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서는 인간은 일자리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 휴식도 필요 없고 노동조합도 만들지 않고 월급을 올려달라고 조르지도 않는 기계를 원하는 기업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동을 통해 정체성과 존재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무엇을 통해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권력이나 ’, ‘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함’, ‘의미’, ‘유대’ 등입니다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일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여유를 얻게 됩니다나에게 주어진 그 비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될 것입니다아마도 많은 사람이 타인과 어울리며 의미 있는 일을 찾을 것입니다기계가 결코 해줄 수 없는 일이 공감과 감동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죠.(p151)”     


지금까지 이루어진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의 목적은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더 잘 살고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로 도래할 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의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의 전환이 그 목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탈물질주의 시대에서의 삶의 가치, 행복의 정의는 그동안의 그것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인문학인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왜 오르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짓밟으며 위로, 위로 올라간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남들이 올라가니까 올라갈 뿐이다. 그렇게 애벌레 기둥이 만들어지고 결국 끝에 이르지만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AI 시대에 왜 인문학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나는 이 애벌레 기둥이 떠올랐다. AI라는 기술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러한 기술의 습득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문계는 취직이 안 된다고 하니까 재능이나 적성과 상관없이 이공계로 몰려가고, 마찬가지로 적성과 재능과 상관없이 너도나도 프로그래밍을 배우려고 한다.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만큼 취직하기 힘든 사회의 어두운 현실인 것도 안다. 그러나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볼 틈도 없이 돈벌이가 되는 일을 찾아 우르르 몰려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그저 마음 아플 뿐이다. 그만큼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테트리스의 막대가 내려오듯 끊임없이 쏟아지듯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인 사회, 현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인공지능의 시대에서는 로봇과 인간이 기술적인 면에서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지, 관리, 보수만 잘하면 24시간 몇 년 동안 쉼 없이 일하는 기계를 인간이 이길 수는 없다. 또한 저자는 말한다. 앞으로의 기술은 전문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며 오랫동안 힘들게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그러한 시대에 인간인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인문학적 소양이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술의 진입장벽이 계속해서 낮아지기 때문입니다어느 한 시기의 기술 습득은 한 세대를 지나면 무용한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인문학은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지점을 통찰하도록 돕습니다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요구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인공지능이나 기계와 무엇이 다른가?’를 성찰하며 답을 찾고 이를 기술에 반영합니다.(p169~170)”     


인문학의 중요성은 다들 안다. 하지만 책 볼 시간 있으면 수학 문제집 한 권을 푸는 게 더 시급하고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게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왜 그러한 공식이 나왔는지, 역사 속 인물들은 왜 자신의 귀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 그렇게 싸우지 못한 몇몇 인물들은 왜 죄책감을 느끼며 시를 남기고 소설을 남겼는지, 왜 인간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땅을 넓히고 싸우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안하무인이 될 수 있는지, 이러한 모든 의문들은 뒤로 한 채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운다’. 웹을 검색하면 나올 지식들을 외운다. 왜 외우는지도 모른다. 그냥 맞추기 위해 외운다. 누가 더 많이 외웠는가가 똑똑함의 표시다. 자랑거리다. 게임을 왜 하면 안 되는가. 왜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되는가. 신호는 왜 지켜야 하는가. 이러한 삶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을 여유가 없다. 그냥 남들처럼 외우고 외워서 외움을 자랑하고 뽐낸다. 그렇게 삶이라는 현실에 내던져진 채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물론 인문학을 배우지 않아도, 고전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며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할 수는 있다. 혼자서도 답을 찾을 수는 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반드시, 꼭 많이 읽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읽어야만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반드시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란 사람은 책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다 알 수 없고 다 경험할 수 없기에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답을 내었던 사람들의 지혜를 알고 싶다. 나 혼자서는 문제인지도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선인들의 지혜를 통해 시력을 높이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인문학이 중요하다. 생각 없이 살고 시키는 대로 하고 그러다 불행이 찾아오면 시대 탓, 사회 탓, 남 탓을 하면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 사람은 이유가 알고 싶다. 내가 하는 행동과 선택의 책임을 스스로 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끄적이며 사는 이유다.     


AI 시대가 찾아오지 않아도 내 일자리는 언제나 위협을 받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때도 많다. AI뿐 아니라 삶의 위험은 언제든 수시로 나타난다. 질병일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일 수도 있고 가난일 수도 있다. 그런 수많은 삶의 장애물들을 ‘장애’가 아닌 ‘변화의 기회’라고 받아들이며 겨울 끝에 반드시 봄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며 ‘삶이라는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인문학은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김혜리의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