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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Dec 24. 2021

센딜 멀레이너선 외1인의 <결핍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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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책을 보내주려 한다. 올해 초에 한 번 읽었다. 그러다 연말쯤, 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읽었다. 읽고 난 후 서평쓰기를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그러다 이젠 이 책을 놓고 싶다는 결심이 든다. 포기가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겠다는 의미다.      


먼저 이 책에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자면 제목이다. ‘결핍의 경제학’이라는 제목 때문에 나는 내용을 오해했다. 만약 내가 마음대로 정해도 된다면 ‘결핍의 구조, 결핍의 원리’라는 이름이 훨씬 수긍이 간다. 다만 이건 경제라는 단어에는 ‘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학문’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으므로 이 제목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조금 더 친근한 제목이었다면 좋겠다는 뜻이지만 이 또한 이 책의 무게와 깊이를 생각하면 역시 투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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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마디로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이다. 따라서 먼저 저자가 말하는 그 ‘결핍’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결핍scarcity을 어떤 것이든 간에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게 가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p13~14)”     


저자가 말하는 결핍은 ‘가난’이 아니다. 가난의 구조나 가난의 원리를 분석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가 부족할 때를 말한다. 단 여기서 이 부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면 맞다. 그래서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은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지나치게 적게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의 정신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결핍은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는다배고픈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만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핍을 경험하든 간에 그때마다 그 결핍에 매몰되고 만다.(p19~20)”     


어떤 것에 결핍을 느끼게 되면 결핍된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몰입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결핍으로 인한 집중은 다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다른 것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즉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당장 카드빚을 갚기 위해 사채를 빌리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한 두 번 카드빚을 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당장 눈앞에 닥친 카드빚 때문에 소중한 지인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렇게 임박한 결핍들이 너무나 크게 보여서 더 소중한 다른 것들을 무시하게 됨으로써 그렇게 놓치고 말았던 소중한 것들이 ‘쌓여간다는 점’이다.      


결핍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놓는다사람들로 하여금 당연하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 터널 시야와 같은 편협한 관점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실제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까지도 무시하고 지워버린다.(p78)”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느슨함’이 없다. 느슨함이란 여유다. 실수가 허용되는 공간이다.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느슨함이 없다. 그래서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고 작은 실수에도 더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검소함과 결핍은 다르다. 검소한 것은 작은 돈의 가치를 알고 그 돈을 가치 있게 쓰겠다는 것이지만 결핍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과 시간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 또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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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해당 된다. 이 말은 곧 소유하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결핍감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이 결핍의 원리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저자는 책 속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 말을 인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없어도 될 것이 많을수록 부유해진다.”(p165)     


행복도 마찬가지다. 지금 자신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졌기에 그게 소중한지도 모르고 있지만 어떤 이는 나에게는 당연한 그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임 치료를 받으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부부가 있는 반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소중한 생명을 옷 수거함에 버리거나 산후조리원에 버리고 가는 부부도 있다. 건강도 다 잃고 가진 게 없어, 라고 투정하지만 그런 자신을 어른이 된 이후에도 경제적, 정신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감사함은 잊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없는 것만을 꿈꾸며 결핍감을 느끼고 그 결핍감에 매몰되어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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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책을 통해서 결핍학이라는 학문을 피상적으로나마 한 번 살펴본 덕분에이따금씩 분출되는 감정 과잉의 문제에서부터 외로움이나 빈곤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당신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p411)”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쓰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위의 문장이다. 처음 시도했던 서평의 구조는 이 책의 정리다. 결핍의 정의를 시작으로 관련 개념, 사례, 결핍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 그러다 책의 말미에 있는 저 문장을 마주하며 정말 나는 이 책을 이해했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빠졌고 저 문장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서평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행히 막연하게 이제는 이 책을 떠나보내고 싶다는 결심과 함께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글을 쓰며 부족하지만 작은 해석을 만날 수 있었다.      


결핍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핍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각자가 가진 결핍은 다 다르다. 일반인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도 결핍을 느끼며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핍감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정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결핍의 끝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쓰지 못한 것도 어쩌면 일종의 결핍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초래한 부족한 글쓰기에 대한 결핍감이다. ‘잘 쓰고 싶다’는 감정이 커질수록 글은 점점 솔직함과 멀어진다. 모르면서 많이 아는 척 현학적인 말로 치장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결핍을 그대로 보여주는 초라한 모습이다. 내 안의 글쓰기에 대한 결핍을 인정하니 비로소 이 서평을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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