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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Dec 19. 2021

우즈훙의 <내 영혼을 다독이는 관계 심리학>

일반적으로 자기애(自己愛),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크다고 하면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이기적이 되거나 타인은 안중에 없는 것이 나르시시즘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제는 간단히 정리하면 ‘올바른,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통해 삶의 문제들, 예를 들어 관계의 문제나 외로움, 사랑 등에 대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서평을 쓰고 싶다. 나에게 필요한 개념, 관점들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완벽함에 대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내 안에 있던 과제 중 하나가 이 완벽함이다. 삶의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완벽함에서 기인한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한때는 나를 강하게 해주고 나를 채찍질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언젠가부터 삶의 문제들을 야기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표면적으로 완벽주의는 완벽함에 대한 추구이지만 과도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내면의 두려움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무기력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작용이다더 깊게 살펴보면 자신의 자아로 뒤덮인 세상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이다.(p90~91)”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누구도 잔소리하지 않아도 집에 와서 숙제를 먼저 해 놓고 나가서 노는 아이. 준비물 살 돈을 달라고 할 때는 십 원도 더 요구하지 않고 딱 맞는 금액을 부모님에게 말하는 아이. 시험일이 예정되면 그때부터 계획표를 짜는 아이. 초중고, 대학교, 대학원 다니는 동안 예습, 복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지각, 결석, 조퇴도 단 한 번도 없던 아이. 그게 나다. 물론 누군가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다. 언니도 그게 참 신기하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월등히 잘하는 건 아니다. 천성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집착한 것일 수도 있다.      


타고난 (아마도) 이 완벽주의는 어른들 눈에는 키우기 좋은 아이, 말 잘 듣는 성실한 학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직장에 다닐 때도 이러한 면은 분명 장점이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무얼 맡겨도 잘할 것 같은 사람. 하지만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늘 나를 닦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이 완벽함의 추구는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부족함을 감지해야 한다. ‘’ 외에 다른 사람의 존재를 먼저 인정해야 2차원적 세계로의 진입이 순조롭다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완벽할 필요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다. ‘나와 너가 만났을 때 비로소 완벽함이 탄생한다.(p103)”     


가장 가까운 타인은 가족이다. 부모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하나의 틀이 있고 그렇게 해주지 않은 부모님에 대해 원망했던 시간이 있다. 꽤 오랫동안. 친구들에 대해서도 친구라면 그건 아니잖아? 라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며 친구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지 못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머리로는 안다. 그럼에도 그걸 무너뜨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분명한 건 관계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점이다. 결혼을 통해 비로소 관계에서의 완벽함 내려놓기를 배웠다. 이 사람이라면 평생 살 수 있겠다, 아니 그러고 싶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에는 몰랐다. 그저 살면서 ‘아, 막연하게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이것이구나, 나에게 없는 이 느낌’ 이런 식이다. 그는 처음으로 나를 장점도 단점도 아무런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나를 바라보고 대했고 그걸 내가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콩깍지가 씌어 나를 좋게만 본 적도 없지만 단점 또한 그냥 나란 사람으로서 바라봐주었다. 결혼을 통해 인생에 뿌리를 내리고 나의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졌던 것은 그런 그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혼자서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완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타인의 불완전함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 사실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완벽함은 행복과 인연이 없다완벽한 이미지 때문에 자아까지 파괴하기도 한다진정한 행복을 좇고 완벽한 껍데기에 매몰되지 마라진실은 완벽함보다 낫고 더 중요하다언제 어디서든 진실한 모습으로 세월의 세례를 거쳐야 우리의 생명력이 단련된다.(p91)”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행복 또한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멀어진다. 완벽이란 견고한 성과 같아서 언뜻 안정적이고 든든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것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은 사랑을 파괴한다이성 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연약한 나르시시즘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 옳고 그름을 가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내가 옳으니 모두 내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라는 믿음이다이는 사랑하는 서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다옳고 그름만 따질 것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233~234)”     


마지막으로 완벽함의 추구에 숨겨진 가장 큰 의미는 ‘통제’가 아닐까 싶다. 완벽하길 원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심지어 그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완벽이 무너지는 것은 그래서 완벽주의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수 있다. 단순히 완벽을 추구하는 건 좋은 게 아닌가?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잖아?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 이게 지금까지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삶의 과제다. 세상의 불완전과 인간의 불완전, 나의 불완전, 당신의 불완전, 그리고 인생의 불완전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공간에 대해     


공간은 흥미로운 개념이다. 아직 완전히 소화되지 못해서 서평을 쓰지 못한 책 중에 센딜 멀레이너선 외 1인의 <결핍의 경제학>(알에이치코리아, 2014)이라는 도서가 있다. 이 책은 결핍이라는 개념의 구조, 원리를 다루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여행 가방에 비유한다. 작은 여행 가방으로 짐을 싸는 사람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으로도 가방이 꽉 차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짐을 싸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의 여유를 줄 수가 없어서 불필요하지만 여행을 돋보이게 할 물건을 넣을 수 없다. 반면 커다란 여행 가방에 짐을 싸는 사람은 굳이 필요성의 여부를 따지지 않아도 다 넣을 수 있고 그러고도 자리가 남는다.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 이것이 ‘여유 공간’이다.     


인간관계에서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다서로 다른 의견과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할 공간과 면적이 필요하다인간관계에서 감정 소모가 발생하는 원인은 자신과 다른 견해와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할 마음의 공간이 좁기 때문이다.(p127)”     


사실 모두 자신이 옳다. 자신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 깨달음에 따라 생긴 그 시선들이기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그러한 자신만의 시선 없이 타인에 따라 흔들린다면 그것이 더욱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각자의 옳음만이 남고 타인의 옳음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타인을 용납하는 정도가 우리 마음의 크기를 결정한다(p128)”고 말한다. 내 마음의 크기는 얼마인가. 부끄럽지만 그리 넓지 못하다. 어떻게 넓힐 수 있는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책을 읽고 쓰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길 소망하면서.     


관계에 대해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요사는 한 사람의 자아는 관계의 충돌에서 형성된다라고 말했다대단한 인물들은 사람과 일의 충돌을 훌륭하게 이겨내고 승리한 사람들이다.(p167)”     


저자가 인용한 야마모토요사의 이 말 앞에서 자꾸 서성이게 된다. 나란 사람이 나로 있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타인이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충돌이라는 불편한 상황이 나란 사람을 더 확실히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관계는 어렵다.       


엄마와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를 맺었기에 둘 중 누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자연스럽게 평등한 관계가 확립된다.(p149)”      


다소 충격적일 만큼 신선한 시각이다. 그건 바로 감정을 공유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것이다. 저자도 말하는 바와 같이 관계가 형성되면 사람들은 우위를 점하려고(p174)”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우위가 생기며 일방적으로 한쪽은 듣고 한쪽은 순종해야만 한다면 이미 대화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자신의 메시지가 먼저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타인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로 자기 의견을 들어주는 것에서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p171)”


 그렇다. 자신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사람에게서 존중받는 느낌은 받을 수 없고 자신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리가 없다. 

평등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관계도 그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점이 바로 관계의 어려움을 낳는 요인일 텐데, 좋은 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서로 드러낼 수 있고 그 단점으로 인한 문제를 풀 수 있어야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것을 ‘관계의 독’이라는 언어로 설명한다. 즉,     


관계의 이 무엇인지 표현하고 그것을 감각화해야 독을 없앨 수 있다상대가 그 독을 인지할 수 있도록 들려주거나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면 관계는 이어지고해결되지 못하면 관계는 끝난다관계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단련시키지만 관계가 유지될 동력이 없으면 두 사람 모두 성장할 기회를 잃는다.(p172)”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 앞에서는 어른이므로 퉁퉁거릴망정 싫은 소리도 참았다. 지인들에게도 웃는 얼굴,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건 내가 아니라는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부딪히기로. 아버지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아직도 죄송하지만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면서 아버지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아버지께서도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얘기해 주니 나도 네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가리고 덮고 숨기는 것이 진짜 잘 지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른이 되서야 알았다. 다만 나의 감정을 전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가는 앞으로도 내가 배워나가야 할 점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나르시시즘과 외로움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나르시시즘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와 더불어 외로움의 문제도 나르시시즘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그런 의도와 어긋나지만 나에게 필요한 개념들을 줍는 독서를 했다. 삶의 과제로서 안고 있던 문제들에 대해 저자를 통해 새로운 시점을 알게 되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좋은 책이다. 왜냐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주어진 대로 읽지 않아도 될 자유를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만나면 서평이 길어진다. 욕심이다. 많이 담고 싶은. 그럼에도 이 글의 불완전함을 허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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