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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28. 2022

후션즈의 <관계를 망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

가능하면 난 타인에게 책을 권하지 않는다. 책도 개인마다 취향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이 더욱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우선은 나 자신에게 권하고 싶고 나의 미래의 아이에게 권하고 싶고 예민한 성격 탓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편하지 않다고 느끼는 지인에게 권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권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바로 제목이다. ‘관계를 망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지 않다. 겉으로는 문제없이 보이지만 자기 스스로는 사람들과 혹은 가족들과 혹은 자기 자신과 불편함을 느끼고 있고 이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이에게 굉장히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 사례를 근거로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해법을 제시한다다르게 보면 자신을 알아가는 관계의 방법론이다상담 사례를 인용하여 먼저 자신을 사랑하며 관계를 개선해 나가도록 이끌고 있다.(p11)”     


20년간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고 상담을 해 온 저자가 그 사례를 바탕으로 조언을 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보통 이런 책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조언이라 자신과 관련 없는 내용이면 넘기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조언 또한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즉 자존감의 회복까지 돕고 있어서 그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관계의 문제든, 개인적인 불안이나 피해 의식이든 모든 문제의 해결에는 ‘나’가 있다. 내가 변해야만 관계의 문제도 개선이 되며 조금 더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이 질문의 답이 관계의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이로써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나는 것이다.(p60)”     


‘나는 누구인가’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평생 풀어야 할 과제라 여긴다. 내가 이 책을 미래의 아이에게 권하고 싶던 이유도 그렇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성향이고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야 한다. 만약 신경이 예민하고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있다면 그건 단점이 아니다. 그러한 성향의 사람이란 걸 알고 이런 나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를 생각하면 될 뿐이다.      


관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관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으며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줘도 그 사랑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관계의 문제 개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을 먼저 세우는 것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이 책을 나 자신에게 권하고 싶었던 이유가 이 부분이다. 이삼십 대를 거치는 동안 내가 싸워온 것이 바로 이 ‘좋은 사람’이었다. 늘 웃고 밝고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타인의 부탁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면서 정작 타인에게는 기대어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나 언니들에게조차 기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며 나의 오랜 생각들이 많이 무너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좋은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좋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일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저자의 의하면 좋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자존감이 높지 않아서 타인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움직인다. 둘째, 자신의 관점이나 욕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셋째,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반드시 혜택을 주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은 받지 않는다. 넷째, 항상 그저 좋은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다섯째, 좋은 언행을 유지하지만 이는 비난의 의미도 들어 있다. 즉 ‘내가 당신들의 뜻에 따르며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므로 당신들이 내 자원과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당신들은 나쁜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여섯째, 항상 좋은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실한 관점과 생각을 항상 감춰야 하므로 남들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     


내가 ‘좋은 사람’에 집착했던 건 굳이 저자가 말하듯 그런 악의가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부정할 수 없다. 싫어도 참고 불만이 있어도 아닌 척하기에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며 나는 희생하고 있다고 항상 내가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또한 일부러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의견이나 감정,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거나,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 모두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내재해 있었다. 누군가가 떠나가는 것이 보고 싶지 않아서 그 누군가에게 나는 항상 필요한 사람으로 있고 싶었던 것이다.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고 내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도 사람들은 떠나가지 않으며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기 위해 고민하던 끝에, 지금은 더이상 좋은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를 나이 먹고 성격이 변했다거나 유한 모습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졌고 자신을 아껴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은가     


이 책을 읽으며 너무 좋은 책이라 권하고 싶은 이들이 몇 명 있었다. 충분히 어른이 된 나이에도 여전히 어릴 적 부모를 탓하며 현재를 살지 못하는 사람, 지나치게 자존감이 낮아서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는 사람,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지 못하면서 돌아서면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투정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꾸고 싶어 한다특히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에 있을 때 그러하다. (...) 선의로 접근해 문제요인을 개선시키고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도우려 한다그러면서 자신은 상대를 위해 도움을 주었다는 자기애적 만족을 얻는다.(p141)”     


그렇다. 친하기에 더 좋은 걸 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 책(생각)을 권하는 것 또한 나의 이기심이었다. 내 기준에 옳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며 이를 통해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나는 옳다’는 걸 느끼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또한 타인의 그러한 성향을 ‘단점’이라 간주하며 고쳐야 하는 것들이라 내 마음대로 판단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타인을 나의 뜻대로 바꾸고 싶다는 이 생각 또한 옳지 못하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보고 인정해주지 못했던 것이니까.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사람과 사람의 경계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사람 간 경계란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아무리 좋은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절대 하나가 될 수는 없다경계가 존재해야 서로 존중이 싹튼다인정하고 배려하게 된다.(p143)”     


실수해도 괜찮다     


어릴 적 나와 앞으로의 나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의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잘못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다.’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겪어야 한다좌절은 진실의 세계를 미리 알게 하며 자아와 자존감을 안정되게 한다좌절을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신력은 현저하게 다르다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을 헤쳐나가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무엇은 할 수 없는지 깨달아야 한다.(p153)”     


우리는 커가면서 실수하거나 무언가를 잘못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반응을 보곤 한다. 공부를 못하면 앞으로 취직도 힘들고 평생 가난하고 결혼하기도 힘들다는 말도 들을 수 있다. 연필을 쥘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순간부터 경쟁 속에 살아가게 된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키도 얼굴도 표준 이상이어야 하고 뚱뚱해서는 안 되고 거기다 돈도 잘 벌어야 한다. 완벽해야 어른들이 칭찬해주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준다. 그래서 숨 막힌다.      


오늘날의 사회에는 실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꿈을 포기하게 되고 쉽게 자신의 한계를 결정지어 버리며 쉽게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한다.(p133)”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말속에는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아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를 하기만 하면 잘하는데 안 해서 그렇다는 말은 변명일 뿐이다. 잘할 자신이 없고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기 싫어서 회피하는 것뿐이다. 관계의 문제도 그렇지만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회피는 결코 답을 주지 못한다.      


회피하고 싶은 감정과 싸우기 위해서는 실수해도,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실수를 통해 우리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뻔한 이 말이 사라진 이 사회에 다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타인의 시선이 불편한가     


예전의 나는 씻지 않고 화장하지 않고 차려입지 않으면 슈퍼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가 조금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이내 내 탓을 했다.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하면서 말이다. 예민한 성격 탓에 사람들과 있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편했고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해 주는 사람들이 편했다. 이런 나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자꾸 신경을 쓰게 되는 이면에는 상대가 자신을 지켜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나는 특별하고 매우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이다.(p157)”     


결혼한 후 바뀐 것 중 하나가 슈퍼나 편의점처럼 가까운 곳에 나갈 때는 더이상 꾸미지 않게 된 점이다. 농담처럼 반복적으로 말한 남편의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라는 말 덕분이다. 사실 그 말은 맞다. 풍기문란한 행동이나 옷차림 등으로 시선을 끌지 않는 한 내가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얼굴이든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 여기는 그것이 오히려 지나치 자기애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만 신경을 쓴다면 결국 상대는 보지 못하고 자신만 보는 것이다자기의 기쁨슬픔외로움고통좌절만 보게 된다이때 자신만 존재하고 마치 상대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상대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도구가 된다.(p203)”       


상대의 감정에 예민한 것이 배려심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상대를 통해 나‘만’ 본다는 것이므로 결국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스스로 내리는 평가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p38)”     


나아가 타인의 시선,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와 남의 경계가 필요하다. 나와 남은 결코 같을 수 없으며 같을 필요도 없다.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가치관이 있고 그 가치관이 서로 다른 것일뿐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결코 ‘관계를 망치는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상처를 잘 받고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고 관계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오랜 경험을 가진 저자가 따뜻한 말로 힘을 주는 책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만 볼 필요가 있는 책도 아니고 문제는 없지만 조금 더 자존감이 높아지고 싶고 조금 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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