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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18. 2022

김형석의 <백년을 살아보니>

책은 나에게 있어 나침반과 같다. 내가 가 보지 않은 곳,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책 이외의 매개체도 있다. 영화도 있고 직접 사람을 만나볼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책처럼 가장 효율적으로 원하는 시간에, 내가 꿈꾸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도구는 책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나, 삼십 대 때도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좋았다. 친언니들이나 아버지 같은 가족의 이야기도 물론 가치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듣지 못하기에 적당한 거리가 있는 분들의 이야기가 더 이성적으로 다가왔다. 책도 그렇다. 내 또래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얻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앞선 경험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책은 왠지 위안이 된다.      


인생의 나이는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다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이다.(p177)”     


존경받는 어른까지는 아니지만 나 스스로 납득이 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오랜 꿈이다. 나이를 먹고 이 나이가 단지 주름과 노화, 건강의 상실만인 삶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 나이에 자부심을 갖고 나이와 함께 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은 죽는 순간까지의 꿈이다. 이런 나의 바람이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다가가게 된다.     


장수의 축복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나 사적인 욕심을 위해서가 많다. 만약 그 장수의 의미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이 생을 더 누리고 싶어서라고 한다면 나는 생의 욕심이 없다. 굳이 그렇게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럼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 장수의 의미, 가치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90이 넘도록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위한 특전이나 축복이 아니라 더 보람 있는 삶을 위해 주어진 기회라고 믿게 되었다.(p77)”     


그렇다. 장수라는 것이 단지 오래 산다고 가치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단지 자식이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삶,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는 저자의 마음가짐에 마음에 숙연해진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가, 그러한 고민이 삶을 더 빛나게 한다고 믿는다.      


행복의 의미     


나의 미래의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드디어 찾았다. 행복한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그 행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는 막연했다. 그러다 이 책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선명한 언어로 만나게 되었다.      


성공과 실패의 객관적 기준은 있다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사람은 행복하며 성공한 사람이다.(p19)”     


생각해 보면 내가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부와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니고 나의 재능과 가능성을 ‘100%’ 달성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며 할 수 있었고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결과들이 지금의 내 삶이기에 후회나 미련이 없다.      


행복의 정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제 각기겠지만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관습에 휘둘리지 않고 나무가 나무로 살고, 꽃이 꽃으로 살 수 있는 삶이라면 이로써 충분하지 않을까.     


사랑의 짐     


이 책을 통해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을 느낀 부분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마음이 오래 머문 것은 이 ‘사랑의 짐’이라는 표현이다.     


남는 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뿐인 것 같다.(p51)”     

역시 사랑의 짐을 질 수 있는 그때가 행복했다.(p299)”     


사랑이 있는 고생, 사랑의 짐. 저자가 말하는 그것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며, 교수로서 제자들을 양성했을 때의 마음이다. 뻔한 말이지만 부모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갖는 것조차 힘든 부부들도 있고 순조롭게 임신을 했다고 해서 키우는 게 만만한 것도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부모에게 자녀는 ‘사랑의 짐’이 된다. 그냥 ‘짐’이 아니기에 버릴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 되는 행복한 고통이 된다.      


만약 한참 자녀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짐을 질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단 말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너무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는 감정과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90을 넘고 현재 100세를 넘은 저자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짐을 질 수 있는 그때가 정말로 행복한 것이라고. 이 말이 필요한 어떤 이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인생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랑한다그러므로 내가 있다.‘는 명제가 가장 적절한 대답이다.(p48)”     


저자가 알려주는 삶의 철학 중에서 가장 깊이 마음에 새기고 싶은 단어는 역시 이 단어다. 인생은 사랑이라는 이 말. 시의 제목은 잊었지만 자신이 사랑한 만큼이 그 사람의 삶이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얼마나 삶을 사랑했는가,가 곧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자 빛깔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다면 그 사랑은 주변에 향기를 뿜게 된다. 추상적인 의미의 사랑 타령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세상은 달라진다.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기심에서도 벗어나게 되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마지막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참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 책이 함께여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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