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히고 마치 나의 일기장을 읽어보듯, 혹은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처럼 거스름이 없는 책일지라도 서평도 술술 쓸 수 있는가 하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서평과 읽힘의 문제는 따로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이 책은 태도에 관한 책이다. 태도? 무슨 태도? 무슨 의미지? 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녀는 태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태도’란 ‘어떻게’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p7)”
멋진 말이다. 제목에서 다시 한번 반하게 된다. 그녀 말대로 이 책에는,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 들어 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대한 말을 아끼고 내가 가장 신뢰하는 5개의 핵심적인 태도(p7)”이 들어 있다. 즉,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다섯 가지에 대한 그녀의 가치관이 들어 있는 책이다.
난 사실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읽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유명한 사람의 에세이는 이미 그 사람의 자취를 동경하기에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에세이‘까지’ 읽는 것이지만, 익히 들어본 적 없는 이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내가 들어야 하는가, 라는 비뚤어진 심보가 있다. 이는 마치, 지하철 안에서 옆 사람의 대화를 가는 내내 들어야만 하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이런 나이지만, 그럼에도 간혹, 얼굴도, 나이도, 관련 정보도 하나도 없는 이의 글에서 공감을 얻고 위로를 얻고 마음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계속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마음에 와닿은 책인데 왜 서평 쓰기가 어려운 걸까. 마음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그녀의 문장들을 곱씹고 곱씹어 본다.
“자식은 부모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어른이 된다.(p65)”
“나이가 들수록 가만히 있어도 삶의 무게는 무거워지니 가급적 많은 것들을 단순화시키고 깃털처럼 가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방식에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자유롭다. 특히 그중에서도 인간관계가 자유로워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맨 먼저 할 일은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싶은가, 나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를 가려내는 일인 것 같다.(p93)”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럴수록 그에 대한 대가는 엄정하게 치를 수밖에 없다. (...) 내가 선택한 ‘자유’가 결과적으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구속’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오로지 기꺼이 감당하고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가질 수가 있다.(p156)”
그렇다. 그녀의 글에는 나의 일부가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맞아, 맞아’를 외치게 만든다. 이 말이 그녀의 글이 식상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어딘가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는 뜻일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 반론이 일어나지 않기에, 너무 자연스러워서 서평이 의외로 써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도 당연히 있다.
“내가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열을 올린다면 나는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p210)”
타인에게 내 잣대를 들이대며 던졌던 비판들이 어쩌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문제가 날카롭게 삐져나와 외부로 찔러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세상을 유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하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도 진실이지만 동시에 결국 제 삶의 무게는 혼자서 짊어진다는 것도 진실이다.(p124)”
결혼을 통해, 혹은 오랜 친구나 가족을 통해, ‘영원한’ 위안을 얻고 안정감을 얻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삶의 진실은 결국 저 문장이라 생각한다. 외롭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고 기댄다면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이다.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했던 지난날을 벗어나, 나이 들수록 유연하고 유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렇다. 삶은 결국 혼자고 고독과 외로움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일지라도 부모가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사랑의 크기와 상관없이 삶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길이다. 그 길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지루하지 않고 의미 있기 위해 ‘곁’을 함께 하는 이가 있다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을 즐길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글쓰기’이며 ‘읽기’라는 것,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