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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어느 작가의 일기

버지니아 울프의 <어느 작가의 일기>를 드디어 다 읽었다.

총 656페이지나 되는, 나로서는 꽤 두꺼운 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지나치다싶을 정도의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혼자 읽고 있음에도 정면으로 그 문장을 마주하지 못했다. 저자의 그 날것의 감정이 나 자신조차 부끄럽게 만들 때는 잠시 책을 덮기도 하며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두꺼운 장수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과 불안과 고뇌 등이 나오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내 가슴에 남은 한 단어는 '체온'이다.


"내 책의 체온(p151)"


"정신적 체온(p497)"


왜 나는 이 체온이란 단어에 내 마음을 빼앗긴 것일까.


한 달안에 못 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초조함. 절판이 되어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빨리 읽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차라리 읽지 않으면 갖고 싶어 지지 않을까, 라는 비뚤어진 마음.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책의 첫장을 열었고 그녀의 날것의 감정에 멈칫하면서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마지막 장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그녀의 유서가 마지막 장에 있었다.

이 책의 편집자이자,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레너드에게 남긴 유서가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이다.


"다시 미칠 거라는 느낌이 확실해요. 다시는 그 끔찍한 시련을 이겨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회복도 안 될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해서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택하려고 해요. 당신은 나에게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주셨어요. 당신은 모든 면에서 최고였어요. 이 무서운 병이 닥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우리만큼 행복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의 인생을 망쳐 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내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일을 할 수가 있었는데. 앞으론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 글도 제대로 쓸 수가 없네요. 읽기도 힘들어요. 내 모든 행복은 당신이 있어 가능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한없이 참을성이 있었고, 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잘해 주셨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누가 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었을 거예요. 이제 나에게선 모든 것이 떠나고, 당신이 착했다는 확신만이 남아 있어요. 더 이상 당신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어요. 나는 어느 두 사람도 우리만큼 행복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버지니아.(p656)"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책을 통해, '당신'이란 단어가 좋아졌다. 당신이란 단어에 담긴 따뜻함이 좋아졌다. 태풍 탓인지 요 며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는데 그 바람을 맞으며 이병률의 그 책을 떠올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저자의 유서가 담겨 있다. 그녀의 당신에게 남기는 유서. 어느 누구도 우리만큼 행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자살을 막을 수는 없었던 그녀의 당신.

당신이란 단어가 전처럼 그저 따뜻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자살을 결심하게 된 사람 앞에서는 그 어떤 당신도 힘이 되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이 혼란스러운 건가.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비록 별로 없을지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혹은 삶의 끝을 생각하던 그 단 한 사람이, 나로 인해 다시 삶을 돌아설 수 있다면, 그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으로 내 삶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책의 마지막은 조금 아프다.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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