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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가질 수 없는 책

버지니아 울프의 <어느 작가의 일기>...


가지고 싶은 책 한 권이 또 절판, 품절이다.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지고 싶은 무언가가 없던 때가 있다. 지금도 대단한 뭔가가 갖고 싶다던가 하는 건 없다. 굳이 대답하라 한다면 몇 가지 말할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그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게 없다는 게 싫어서 있으면 좋은 것들의 목록을 적어 두곤 한다. 


다만 요즘 하나씩 늘고 있는 ‘가지고 싶은 게’ 있긴 하다. 도서관에서 진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그 책을 영원히 내 옆에 두고 싶어진다. 이상한 논리지만, 영원한 것을 늘 꿈꾸는 한편으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하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다면 처음부터 곁에 두고 싶지 않고 싶다. 이런 나지만, 그래도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은 언젠가 분실이든 빌려주고 못 받는 일이 생기든 해서 이별의 날이 올지라도 너무 좋은 책은 내 옆에 두고 싶다.

그런 나에게, 또 한 권 가질 수 없는 책이 생겼다.


늘 많은 것을 내 인생에 원하지 않았는데 정말 갖고 싶은 그 단 하나를 갖지 못할 때가 있다. 단 하나를 위해 나머지 아홉 가지를 포기하며 살았는데도 그 단 하나도 쉽게 얻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원하고 가지고 싶어 하고 소유하는 게 두려운지도 모른다. 가지고 싶어지는 날,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두려운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은, 떠남의 불안도 함께 소유하게 되는 듯하다. 시작은 끝을 동반한다. 끝이 없는 시작은 없다. 언젠가 소유도 떠남도 시작도 끝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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