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번째 자화상을 그렸다.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사진첩을 뒤지고, 그리고 싶은 시간 속의 나를 찾아 몇 장을 모아 두었다. 첫번째 그리게 된 나, 당신이 있던 시절의 나. 오려진 사진이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때의 그 공간과 시간과 느낌을. 나는 웃고 있다.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가 바라본다. 머리카락, 눈코입의 위치, 그것들의 조화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목에 목걸이가 걸려 있다. 십 년이나 잊고 있던 그 목걸이의 의미를 이제야 기억해낸다. '현재의 나'는 웃고 있는 '과거의 나'를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처럼 미소를 짓는다.
완성된 자화상은 사진 속 나보다 예쁘다. 머리가 알고 있는 단점들을 손이 제멋대로 수정한 모양이다. 어쩌면 그 시간과 공간이 나를 현실보다 예쁘게 보이도록 한 건지도 모른다. 연필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입술만큼은 색을 넣어 주고 싶었고 색을 입혔다. 결국 사진 속 과거의 나와는 닮지 않은 자화상이 되었다. 지금의 거울 속 나와도 닮지 않았다. 자화상 속 나는 누구일까.
2.
두번째 자화상을 그렸다. 예전에 <연필명상>이란 책을 읽던 당시에는, 자화상을 그리려고 마음 먹어도 좀처럼 엄두가 안 나던 일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나란 사람은 시동이 걸리는 데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첫번째에 그린 사진보다 몇 년 더 과거로 간 사진을 골랐다. 아마 주민등록증을 받기 위해 찍은 사진인 듯 싶다. 경직되어 있다. 이번엔 웃고 있지 않다. 내가 아는 나의 얼굴의 단점들을 모두 솔직하게 그림으로 담는다. 말로 표현하기조차 싫었던 단점, 미운 점들을 오늘은 왠지 창피해 하지 않고 손이 그리고 있다. 머리가 아는 나의 얼굴의 못난 점들이 모두 정직하게 그림으로 그려졌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솔직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두번째 자화상 역시 낯설다.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를 그린 것일까. 얼굴의 각 요소들은 분명 나의 단점마저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나 각 요소들이 모인 전체의 얼굴은 사진 속 얼굴과 다르다. 첫번째 그린 자화상보다도 더 멀어져 있다. 나는 누구를 그린 것일까. 왜 나는 내 얼굴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내 머릿속 나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언제쯤 나는 내가 보이는 나를 그릴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