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by 유정

가장 사랑하는 작가 김애란 그녀의 신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17)을 읽은 지 벌써 한참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랑하는 당신의 글이기에 쉽게 감상을 쓰지 못하고 잠들기 전 쪼개어 읽고 일기를 쓰곤 했다. 하지만 아직도 서평은 쓰지 못했다. 쉽게 쓰고 싶지 않다, 쉽게 쓸 수 없다, 소중함을 그대로 담고 싶다, 이런 욕심이 결국 한 글자도 적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욕심. 욕심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당신의 책을 지나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당신의 글, 당신의 생각이 들어 있다. 바깥은 여름. 바깥은 여름이지만 여름 속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담은 당신의 글. 내 아픔과 내 슬픔과 내 행복만을 쓰는 나의 생각을 쫓아가다보면, 당신의 글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춘다. 한비야의 <그런, 사랑이었네>(푸른숲, 2009)를 읽던 순간에도 그랬다. 내 안에 갇혀서, 내 상처, 내 행복만을 바라보며 타인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김애란 그녀를 떠올리다 보면 언제나 한 가지 질문에 이른다. “당신에게는 언어와 문법이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나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질문이 떠오른다. 특히 이번 신작 중 <침묵의 미래>를 읽을 때 더욱 강렬하게 느꼈다.


“이들은 단체 사진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가는 유령처럼 모호하게 존재한다.”


“내 화자 (...) 그가 쓰는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 격분하고, 저항하고, 애원하고, 의기소침해지길 몇 번. 어느새 그도 다른 이들처럼 깊은 침묵 속에 잠겨 버렸다.”


“이곳 화자들은 (...)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그건 말을 향한,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이다.”


“그에게 모어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하면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나누면 훨씬 신날 말. 시끄럽고 쓸데 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고, 호소하는 그런 말들을..”


그녀의 이 글을 읽고, 이렇게 손으로 옮겨 적다보니, 그녀의 글 속 화자들이 모어를 그리워하듯 나도 나의 언어와 내 말이 그리워진다. 글 속 화자들처럼, 지독하게 모어가 그리워질 때면, 나는 가끔 일기를 들춰본다. 지난 글을 찾아 읽기도 한다. 이해가 된다. ‘은/는’, ‘도’ 등의 조사의 의미 하나하나도 이해가 된다. 왜 그곳에 쉼표가 있어야만 했는지, 쉼표의 의미조차 모두 이해가 된다.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지독한 향수병이 그제서야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리고 김애란 당신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 진다. 같은 언어와 같은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김애란 당신 곁에는 있나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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