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쓰려다 멈추고 말았다. 서평을 기다리는 책들이 많이 쌓였다. 서평 쓰기 힘든 책도 있지만 비교적 주제가 명확해서 도전해볼 만한 책도 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生>도 그런 책의 한 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고 그 대답은 ‘필요하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 없이 던져지 이 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또 하나는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느꼈다. 그 책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쓸 거리를 찾았음에도 서평 쓰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당신 때문이다.
당신은 말했다. 영화나 책에서 나오는 비극적인 이야기, 슬픈 이야기들을 보면 공감이나 슬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글이나 영화를 만든 그 사람들은 그런 상황들을 상상으로 꾸며댔겠지만 자신은 그것들을 生으로 겪었기에 그렇게 앉아서 만든 이야기들을 보면 공감의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너는 말했다. 명확한 너의 말은 생각나지 않지만 화가 난다는 느낌처럼 들렸다.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겪은 당신. 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면 네가 말하듯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너는 말한다. 아직까지 자기만큼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아니 너는 불행이란 단어를 사용한 건 아닌 것 같다. 비극이란 단어를 썼을지도 모른다. 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는 나로서는, 너의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네 이야기에 눈물이 흘렀다. 그때 너는 물었다.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우는 거냐고. 자신은 그런 공감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너에게 삶은 너무 가깝고 현실이었고 노골적이었다.
서평 쓰기를 포기한 것은, 네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말하는 희망, 생의 이유, 재미를 찾아야 한다는 등의 메시지들이 한 때는 나에게 삶의 나침반이었다. 하지만 너를 통해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생을 직접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 채 비겁하게 살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나보다 열 살 이상이나 어린 너지만 너에게 죽음은 너무나 가깝다. 그렇기에 너는 두려움으로 쭈뻤거리며 사는 나에게 말했다. 삶은 그렇게 이것저것 생각할 만큼 길지 않다고. 미래의 계획, 희망 등의 입발린 말보다 당장의 눈앞의 현실을, 마치 끊임없이 내려오는 테트리스 퍼즐을 해결해내듯 살아야 하는 너에게 나의 글은 왠지 부끄럽다. 삶을 온 몸으로 살고 있는자가 말하는 삶의 언어, 그리고 머리로, 두려워하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사는 비겁한 나의 글의 언어.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말, 오래 전에 가슴에 들어 온 단어지만 당신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한 사람과의 만남은 그것이 반드시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의 존재가 깊이 다가올수록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너’라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생을 내 안에 품게 된다. 나는 겪어 보지 못한 내가 너를 모르던 시절의 너의 이야기, 너의 시간, 너의 그 시절의 감정, 그리고 그 경험. 그리고 현재 네가 놓여진 현실을, 하나의 세계로 내 안에 품게 된다. 그렇게 너의 언어가 내 언어와 만난다. 바닷가에 쉼 없이 밀려오는 밀물이 모래사장에 흔적을 남기든 한 사람의 언어가 내 안에서 형태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