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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Dec 01. 2015

더 멀리 더 멀리 던지기


1. 드디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클라이언트는 말한다. 이제 다음 주에는 나머지 서류작업을 하면 되겠네요. 성과보고서, 결과보고서, 계약서, 견적서 등등.. 수 많은 서류들을 챙겨야한다.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다. 왜이리도 챙길 게 많은지, 그리고 왜 이렇게 공식적인 서류들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돈 받기 위해서는 견적서에 비교견적서, 세금계산서를 끊고 지출증빙을 해야할 때는 지출결의서에 영수증도 다 붙이고 이체확인증도 모아야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지만 귀찮은 일들을 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 사실, 하기 싫다. 아마 연말이 되면 이런 고충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말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와서 어쩔 수 없이 쌓여있는 방학 숙제를 하듯이 해치우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전국에 가득한 것 같다. 나도 물론이다. 제일 싫다. 막상 책상에 앉아 마음 먹고 시작하면 금세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싫어서 야근을 한다. 하기 싫어서 오전을 보내고 대충 뭘 해야할지 체크하고 벌레 보듯이 밀어놓고 딴짓하다가 오후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여섯시가 지나 꾸역꾸역 조금씩 손을 대다가 결국 밤 늦게까지 정리하곤 한다.


3.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혹은 주체적인 일을 하더라도 그런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본인이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성공해야한다. 연예인들은 방송이나 자신들의 직업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매니저와 코디 등을 둔다. 스타들 같은 경우에는 홍보 전담하는 인력을 따로 두기도 한다. 회사에서 세금과 같은 자잘한 일을 신경써주기도 한다. 집중하기 위해서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면 비서를 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 큰 그림을 보고 자신이 해야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안된다.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도 그럴 만한 인물이 될 거란 확신도 없다. (슬픈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늘 짜증내고 귀찮아하면서 해야할까. 지금까지는 그래,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4. 목표가 눈 앞에 있으면 옆에 일들이 버겁다. 내가 지금 여기 건널목만 건너면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 귀찮고 초조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것만 건너면 저 버스를 탈 수 있는데, 라면서 초조해지고 불안해진다. 이 횡단보도가 나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 버스를 타는게 나의 목표가 되어버리면 말이다. 


5. 하지만 좀 더 멀리 던져본다. 계속해서 더 멀리.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갈 곳은 나의 데이트 장소. 데이트를 통해 만날 사람은 애인. 애인을 만나서 좋은 점은 행복. 왜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사랑하니까. 왜 자꾸 이렇게 감성적으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런 것이다. 부끄럽다. 다시 다른 방향으로 시작해보면, 버스를 타고 갈 곳은 홍대 맛집. 맛집에서 맛있는 걸 먹는 이유는 내가 먹을 걸 좋아하고 즐거우니까. 그럼 즐겁기 위해서 가는 것이니까 이런 걸로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오히려 낭비같은 것이다. 놓치면 다음 걸 타면 된다. 맛집에 못가면 다음에 가도 되고, 거기 못가면 다른 곳에 가도 되지.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이어져서 더 커다랗고 더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인 것이다.


6. 눈 앞에 있는 과제들은 벽이 아니다. 단순히 갈대숲과 같은 것으로 손으로 제치고 나아가면 된다. 귀찮고 성가시다. 하지만 이걸 제치고 나아가다 보면 더 먼 곳에 우리가 보고 싶었던 풍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가야한다. 슾지가 나와서 신발이 젖는 것이 싫다. 하지만 이걸 지나서 멋진 폭포가 기다리고 있고, 이 폭포를 보기 위해서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렇다면 신발 젖는게 싫어서 돌아갈건가? 아니다. 그게 뭐 중요해, 가야지.


7. 별 거 아닌 일은 얼른 해버리면 된다. 그게 중요한 이유는, 돌아가지 못하고 꼭 해결하고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숙제가 아니다. 누구도 선생님이 아니고, 나도 학생이 아니다. 


8. 열심히하자, 희망을 갖자! 앞으로 나아가자!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스스로도 신기하게 보는 부분이다. 사람이 오래 살고 볼 일이라 하더니.


9.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10. 그런 거에 마음쓰지마, 아깝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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