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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Dec 28. 2016

인공호흡


겨울 답다,

고 생각했다. 아침에 현관을 열고 피부에 착 감기듯이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면서 말이다. 깊게 숨을 들이쉬면 허파에 차가운 계절이 가득차는 것이 느껴진다. 후, 하고 날숨을 불면 속에 있던 호흡이 이별을 아쉬워하듯이 하얗게 부서진다. 그렇게 몇 번 천천히, 기지개를 펴듯이 숨을 쉬어본다.

호흡은 다분히 절대적인 일이다.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봤자 소용도 없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다. 프리 다이빙처럼 호흡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신체를 경쟁할 수도 있겠고, 오랫동안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폐활량이 마라토너에게 유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호흡은 그리 경쟁적인 분야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 가쁜 호흡을 내쉰다고해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리듬으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적절한 패턴으로 숨 쉬면 되는 노릇이다.

또한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위한 행위가 호흡이다. 호흡은 저장할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보통 1~2분? 오래 참는 사람은 그것보다 더 하겠지. 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예습할 수도 없고, 복습할 수도 없다. 이미 호흡이 멈춰버린 상태에서 지난 호흡을 다시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흡이 부족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해도, 그것은 순전히 가빠져버린 '지금'을 위한 호흡이다. 낭떠러지 끄트머리에 서서 팔을 휘두르며 몸을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꽤나 위태로워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게 우리 삶의 민낯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중요하다, 숨을 쉰다는 것은. 우리는 숨 없이 살 수 없다. 먹지 않고는 살아도 마시지 않고는 못사는 것처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숨이다. 그래서 일찍이 여러 전설 등에서 숨은 영혼의 드나듦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깨닫지 못하면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을만치 자연스러운 행동,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는 모든 행동에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행위. 계속해서 인생에 오늘을 갱신하기 위한 중요한 것, 그것이 바로 숨을 쉬는, 호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우리는 호흡 이외에 많은 것들을 호흡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파악하고 재고 경쟁하면서 말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것은 (지금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있었으면 좋겠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죽을 것처럼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해내고 싶다. 열망이 있다. 목적이 있는 열망이 아니라, 그 목적을 찾고자 하는 열망 말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내가 지금 찾은 것이 그것일까. 이게 나에게 맞는 걸까. 내가 지금 뜨거운 것은,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깊은 숨을 드디어 만났기 때문일까. 그럴때마다 중심을 잡기 위해 내가 떠올리는 말이 있다. 경쟁하지 말자, 이게 나에게 호흡같은 것이라면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누군가 했다고, 혹은 나보다 먼저한 사람이 있다고,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질투하거나 시기하거나 포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맞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숨을 쉬는 일과 먹고 사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숨은 쉬어야 한다. 나에게 그런 일이 있을까? 아니,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 방향이 조금 지나친 것은 아닐까. 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꾸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뜨거워지려하는 마음을, 겨울의 깊은 숨으로 차갑게 식히면서 냉정하게 묻는다. 이게 나의 호흡을 대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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