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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Jan 04. 2017

식물을 기른다는 것

떼쓰지도 않고 말썽부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보채지도 책망하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그 자리에.

화분 안에 갈무리 된 식물들의 이야기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아니다. 변명은 많다.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내 손이 식물을 잘 못타나봐, 식물 별로 안좋아해, 등. 하지만 최근 사무실에서 죽다 살아나 싱싱해진 식물들을 바라보며 그런 변명들 하나 소용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삶에 규칙적인 패턴을 더하는 일이었다. 나는 삶에 규칙을 더하는 일에 매우 옹색하다. 매일같이 물을 주고,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이틀에 한 번으로 규칙을 정해서 때가 되면 해를 쬐어주는 그런 일을 하는 것에 까다롭고 인색했다. 긴 호흡으로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을 하면 식물은 조금씩 생명력을 더해간다. 작은 규칙이 만들어낸 생명력을 바라보며 느끼는 기쁨, 그게 식물을 통해 인간이 받아들이게 되는 감정일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작아도 규칙적이고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만 하는 규칙을 지키는 건 무척 어렵다. 하루에 30분씩 운동 하는 것, 하루는 쉽지만 3일부터 어렵고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시간이 지날 수록 쉬워지기는 커녕 아무리 긴 시간 동안 지켜온 규칙이라도 단 하루의 균열로 부서지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진다. 규칙에 쏟았던 마음과 시간이 무섭도록 소용없어질 것 같다. 진짜 그런가. 나는 그런 균열이나 붕괴가 무서워서 경계해왔던 걸까. 

사무실 구석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있는 식물을 본다. 하루 하루 작은 생수 반통을 쏟았을 뿐인데, (물론 매일 내가 다 한 건 아니다)  6개월 전에 거의 다 죽어가며 작게 웅크리고 있던 모습에서 이제는 햇살로 길게 손을 뻗고있는 생생한 생명이 되었다. 죽다 살았다는 말이 여기 가시화 되어있다. 누가 살린 것도 언제 살아난 것도 아니다. 누군가 매일 반복해서 지켜낸 규칙이 기적을 만들었다. 그렇게 과거를 기록된 시간이 식물의 생명이 되었다고할까. 식물을 바라보며 나는 과거를 주시하게 된 걸까. 만일 식물이 없었다면 나는 과거를 추억하지 않았을까. 그저, 버려진 식물의 시체를 치우며 귀찮은 일이 생겼다며 외면하고 말았을까. 음, 끔직하다. 

앞으로의 나는 삶에 규칙을 만들고 패턴화 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고민이 된다.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며 힘든 시간, 머릿속에 새겨지는 약속들을 굳게 지켜내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뒤이어 따라오게 될 결과는 우연의 선물처럼 놔두고, 그 패턴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깊이 새길 것인지 말이다. 여튼 뭐가 되었던 간에, 일단 생각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 그러니까 저기 사무실 구석에 뻗치고 있는 식물도 저렇게 성장하기 까지 참 어려운 과정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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