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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Jan 31. 2017

배설1

바람의 바람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길가에 얼음이 햇빛을 받아 부서진다. 벌어진 외투 사이로 찬 기운이 들어온다. 급하게 옷깃을 여민다. 바람이 불어온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고개를 들면 머리카락에 올라간다. 의미없는 이야기들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날아가면서 멈춘다. 사라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날씨에 대한 이야기일까. 내일에 대한 이야기일까. 하염없이 쏟아지는 마음을 주워담아본다. 나는 걷고 있었던 것 같다. 확신이 없다. 바람이 날려보낸 확신은 형태없는 희망으로 가득 찬다. 누군가는 좋아한다. 나는 별로, 라고 말했던 것 같다. 또 확신이 없다.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머리를 좀 잘라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전시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거침없이 떠나는 문장을 붙잡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 때는 확실히 자유로웠던 것 같다. 뭔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의 제약이 거침 없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왜 자유로웠을까,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해서 곱씹어보지도 않았을까. 이렇게 변해버린 내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이 두렵다. 지금까지 지내왔던 과거와 생각들이 부정당할까봐 무섭다. 창피하다. 가끔은 부끄러움이 너무 뜨거워 뒷걸음질 친다. 이렇게 배설하듯이 떠나는 단어들이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드는 걸 보며 나는 아직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변기는 어딨을까. 물을 내려도 왜 씻겨내려가지 않을까. 매달리는 것은 과거일까. 환영일까.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미래일까. 질문들이 담배연기처럼 파랗게 흩어진다. 담배연기가 파랗다고 말하는 것, 그것마저 외롭다.

허영심이 픽션으로 만들어진다. 진실은 '팩트'라는 별명으로 움직인다. 원래 진실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찰이 바뀌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리저리 쏘다니는 이야기들에 반짝이는 햇살이 내려앉는다. 핑크빛 숨결이 향기롭다. 단어와 단어가 부딪친다.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귀를 막는다. 시끄럽니? 물음에 대한 해답 또한 거침없이 시끄러운 침묵. 

앞머리가 많이 자랐다. 오랜만이네요? 미용사의 물음에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대답한다. 밖에 많이 춥죠? 목도리 끝에 매달려 얼어붙은 눈이 눈을 흘긴다. 위잉, 하고 창밖에 파열음이 들린다. 사람들의 몸이 흔들린다. 청춘의 마음은 언제나 싸늘하다. 봄이 지나고 찾아오는 뜨거움은 언제나 냉정하다. 방언처럼 쏟아지는 이야기에 자연스러움을 덮어낸다. 의미없는 조합들은 또 다른 의미를 만들 것이다. 가끔 믿는다. 때로는 의심한다. 사라진 듯이 존재하고 떳떳하게 사라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다. 설명의 부재가 만들어 낸 무지의 진동이 재밌어 보이는 순간을 기대하면서, 소화된 것이 쏟아낸 배설의 흔적들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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