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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Jun 09. 2017

엄마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영재, 수재 정도는 될거라 기대했다. 어른이 되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겠지, 라면서.


엄마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우리 집에 내 또래 아들이 있는 엄마친구가 놀러 왔다. 아이들을 놀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으레 엄마들이 그렇듯 자식자랑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림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아들이 잘그려, 아니 우리 아들이 더 잘그려. 결국, 그럼 한 번 그려보라고 하자, 가 됐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들 앞에서 크레파스를 옆에 둔 하얀 스케치북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이겼다! 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4~5살 된 꼬마가 그림을 잘 그려봤자 얼마나 잘 그리겠는가. 진짜 천재도 아닌데. 하지만 엄마는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림 그려봐, 라고 엄마가 말을 하자, 엄마 친구의 아들은 멀뚱멀뚱 엄마를 쳐다보면서 ‘엄마 뭘 그려?’ 라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슥슥 하얀 스케치북을 멈춤없이 채워갔다고.  


그림은 그 이후로도 계속 그렸다. 중학교 때까지 낙서를 많이 했다. 지금은 비록 낙서라고 부르지만, 그 때는 진지하게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도, 뭔가를 보면서 그리는 것이나 따라 그리는 것은 영 못했다. 머릿 속에 있는 걸 그리는 게 좋았다. 그걸 더 잘하기도 했고.


하지만 어느 순간, 그림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


엄마가 기대했던 천재는 그림을 잘그리는 천재가 아닌 건 분명했다. 그냥 막연하게 뭔가 되게 잘하고 똑똑해서 성공하는 어른이 되길 바랐던게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천재는 커녕, 수재도 영재도 아니었고, 심지어 게으르고 뺀질거리는 밥도둑이었지.


엄마의 기대는 숙제가 되어버렸다. 엄마의 기대가 잘못된 건 아니었으리라. 그렇다고 숙제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을테고. 그저 내 마음대로 그리는 것보다 시키는대로 잘 그려야 되는 세상이었을뿐.


그렇게 어른이 됐다. 이제는 이걸 그려라 저걸 그려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린다. 이걸 이렇게 그려라, 저걸 저렿게 그려라 라면서 구체적인 지시까지 있다. 그럼 끙끙 거리면서 뭐가 맞는 걸까, 원하는 게 뭘까.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고민하며 그림을 그려낸다. 그러다 가끔 예전에 하얀 백지에 내 맘대로 그려대던 그림이 그리워서 다시 백지를 펼친다. 새하얀 백지를 앞에두고, 그림도 글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마주하고 손을 대보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뭘 채우고 싶은지, 마음이 원하는 게 뭔지, 이걸 하는 게 맞는 건지, 어디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어릴 적 그림으로 채우던 백지는, 이제는 나의 부담으로 가득차고 말았다.


하지만 운명은 재밌게도 나에게 새로운 백지를 채우기 위한 연습을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카피를 쓰고,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이 그렇다. 언젠가 다시 백지에 원하는 것들을 막힘없이 채워가는 일을 위한 과정. 때가 되면 다시 한 번 백지를 펼쳐 볼 것이다. 사실, 그 백지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백지를 하얗게 만든건 엄마의 기대였다. 나는 엄마의 기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기대한다. 그것마저 배제한 한없이 투명한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낼 날을, 진짜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원하는 나의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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