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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Jun 14. 2017

시대생존력




(원본 : https://www.youtube.com/watch?v=0QLHcaic31w )



후반부에 보면 맷은 이런 얘기를 한다. 2017년에 21살로 살아간다는 건, 문화적인 적응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세대를 의미한다. 어떤 문화를 따라하고 즐기는 것은 문화를 뺏는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흑인은 이래야 해, 백인은 저래야 해 라고 선을 긋고 그걸 지키자고 말하는 건,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시키는 것이다, 라고.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맷은 흑인처럼 말하고 힙합 스타일로 옷을 입었다. 그리고 흑인에 관한 농담-백인에겐 금기일 수도 있는 그런 농담을 아슬아슬하게 던지는 스탠딩 코미디를 한다. (그런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공연이 끝나고 한 백인 여성이 그에게 찾아와 그런 농담을 하면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건 그들의 문화를 침범하는 일이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그 때 맷이 한 대답의 내용이 위와 같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째, 맷이 한 이야기가 논란의 여지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수자를 '보호'한다고 했던 많은 태도들이 사실 상 그들을 격리하고 사회적 계층을 만드는 행위였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약자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만들고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현상들을 목격한 적 있다. 백인 사회에서 유색인종이 그렇고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 여성들이 그렇다. 그리고 기타 다양한 문화와 사회에서 다양한 집단들이 그렇다. 심지어 보호의 대상으로도 만들지 않은 그룹을 지적하며, 그들 보다는 낫잖아 라고 말한다. 이게 과연 그들을 평등한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이들이 할 수 있는 태도일까. 그들을 지켜줘야해, 존중해줘야해 라고 말하는 건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들의 입장을 직접 듣고 그들의 시선을 직접 경험해 본 적 있다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세대적 문화 상대성이다. 친구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예술의 미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에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거였다. 세대도 마찬가지고, 당연하다. 일본 광고 중에서 이런 게 있다. 지금의 10대는 당연하게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많은 정보를 다루고, 온라인과 모바일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super student'라는. 세대적인 경험이 다른 것은 그들이 가진 '당연한' 것들이 다르다고 설명할 수 있다. 아예 출발선이 다르다.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조화롭게 살기 위해 상대에 대해 학습하고 인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런 노력 없이 단순히 그걸 문제로 보고, 인정하지 않고, 수정하려는 의지다.


세상이 재구성되는 건 공포스러운 일이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달라진다. 무섭다고 도망쳐선 될 것도 안된다. 적응은 성공을 위한 교두보 같은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도태는 탈락이다. 마도로스가 바람을 읽는 것처럼, 살기 위해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부정하지 않다면 인생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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