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없는 밤
처음 차박을 했던 게 언제였을까. 아마 2017년쯤, 캠핑이 유행하기 전이었다.
문득 일출이 보고 싶어 회사 옆 아울렛에서 급하게 이불 하나를 사 들고 동해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한기에 오들오들 떨며 하룻밤을 보냈던 그날, 그게 나의 첫 차박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열정이 많았고, 나름이지만 낭만이 가득한 친구였다. 시간이 지나며 많은 것들이 담담해졌고, 무언가를 온전히 느끼기보다 흘려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서일까.
편한 숙소를 두고 왜 좁은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건지, 그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차에 누워 있으면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는 언제 세탁기를 돌릴지, 언제 밥을 해야 할지, 운동은 언제 나가야 할지, 늘 다음 행동으로 머릿속을 채웠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 들어오면 ‘다음’이라는 단어가 사라진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는데, 이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하다. 불편하지만 고요한, 그 낯선 정적이 나를 비운다.
사실 밤이는 차박을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 불안이 있는 친구라 낯선 소리나 작은 인기척에도 쉽게 긴장한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거나, 멀리 지나가는 차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운다. 그래서 나는 늘 밤이를 위해 가능한 한 조용한 곳을 찾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차박을 계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루의 리듬이 무너진 그 불규칙함 속에서 밤이는 자유를 느낀다. 그리고 낯선 장소에 서 있는 익숙한 차 안에서, 그는 창가에 몸을 기대어 밖을 바라보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책을 펼친다.
좁고 답답하지만, 서로의 호흡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워서 밤이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짖고, 나는 그 소리에 잠을 설쳤었다. 그런데 몇 번의 여행을 지나며 그의 반응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내 다리에 턱을 괴고 영화를 보는 나를 조용히 바라본다. 옆으로 다리를 뻗고 잠에 들기도 한다.
밤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문득 안다. 불안이 사라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어떤 시간을 함께 겪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 둘 다 그렇게, 세상을 오롯이 느끼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좁고 불편한 공간임에도 세상은 오히려 넓게 느껴진다.
차문을 열면 매번 다른 공기, 다른 냄새, 다른 빛이 들어온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간은 새로워진다.
밤이와의 차박은 그렇게,
불편함과 여유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몸은 갇혀 있지만, 마음은 열린다.
세상과 단절된 듯하지만,
그 단절 속에서 오히려 세상과 연결된다.
그 답답함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