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 잘못된 장소에 놓일때
꽤 된 이야기다.
여성 코파운더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나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책임감의 시작이 될 줄.
500억 투자를 받은 B2B SaaS 스타트업 코파운더. 타이틀은 화려했다. 하지만 진짜 무게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B2B SaaS 판이라는 곳이 있다. 실리콘밸리고 어디고, 대부분의 코파운더는 남성이다. 그 중에서도 특정 배경의 남성이 많다. 그때는 여성, 특히 아시안 여성 코파운더가 흔하지 않았다.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500억 투자를 받았을 때도, 성과를 낼 때도 계속 그 책임감을 느꼈다.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를 따라온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동시에 "아시안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 둘이 함께였다.
처음엔 자연스러웠다. 내가 의사결정을 내리면 팀원들이 더 용기를 내고, 나의 성공이 그들의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따라온 사람들이 잘되는 것. 그게 내 책임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리더십의 책임감이 아니었다. 다른 레이어가 있었다.
"여성도 할 수 있다"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B2B SaaS 판에서 여전히 흔하지 않은 여성, 특히 아시안 여성으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내가 실패하면 그것이 마치 "여성 창업자는 할 수 없다"는 증거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
밤샘 작업하고, 피곤해도 티 내지 않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약해 보이면, 그게 "여성은 이 정도 일을 못 해낸다"는 증거가 될까봐. 그리고 다음 여성 창업자들이 더 어려워질까봐.
그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챙기는 것보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우선이 됐다. 나의 성장을 고민하는 것보다, 나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틀려갔다. 회사는 계속 성장했다. 매출도 나왔고, 팀도 커졌다. 근데 나는? 내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어디서부턴가 갈라지고 있었다.
나는 못 봤다. 아니, 봤는데 외면했다.
밴드위쓰가 자꾸 좁아졌다. 회의에서 내 목소리가 작아졌다. 새로운 걸 배우거나 시도할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옳은 결정"보다 "그들이 실망하지 않을 결정"을 먼저 찾게 됐다.
마음이 자꾸 상했다. 그 이유를 몰랐다. 내 책임인 줄 알았다. 내가 더 단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을 더 잘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다였나. 정말로?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부과한 책임감이었다는 걸. 아무도 나에게 "롤모델이 되세요"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팀원들도 그걸 직접 요구한 적 없었다. 내가 내 마음 속에서 스스로 그 역할을 만들었고, 그 역할 안에 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역할 때문에 나 자신을 계속 갉아먹고 있었다.
떠나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을 때, 그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신호가 아니라 내가 이미 충분히 견딘 상태라는 뜻이었다. 내 성장이 멈춘 지 오래고,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고, 더 이상 내가 필요한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 것.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일어났다. 나를 따라온 팀원들이 어떻게 될까. 그들이 내 떠남을 실망스러워할까. 혹은 나의 떠남이 그들의 성장을 꺾을까.
그런데 떠나고 봤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떠나도 팀원들은 자기 길을 찾아갔다. 내가 그렇게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거기 있는 게 최선은 아니었던 경우도 있었다.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지켜질 필요가 없었다는 깨달음.
퇴사 직후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500억 투자 받고도 나는 지금 백수야"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올라왔다. 누군가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책임감 없이 퇴사해 버리면 남은 직원들은 어떻게 하나."
그 댓글이 마음에 오래 걸렸다. 내가 내 자신한테 했던 말이 타인의 입에서 나왔을 때의 느낌. 처음엔 방어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팀원들은 전문가들이었다. 각자 자신의 경력을 생각하는 프로페셔널들이었다. 내가 떠나든 말든, 그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갈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내가 머무는 것이, 내가 상해 있는 것이, 내가 피곤해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쁜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리더가 자신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책임감을 져야 한다는 생각. 그게 정말 건강한 업무 문화일까.
왜냐면 내가 그들을 보호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다. 동등한 어른으로,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개인으로 본 게 아니라.
떠나고 나서야 물었다. 내가 정말로 그들을 위해 남았던 걸까. 아니면 나의 필요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모습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나를 롤모델로 보고,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있던 것. 내가 여성이고 아시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 이 판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갈증. 혹은 두려움. 내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
생각해 보니, 내가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아래에는, 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매일매일 나를 갉아먹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 아시안이라는 것이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강점을 증명할 책임감까지 자동으로 갖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임감은 강점이 아니다. 그건 무게일 뿐이다.
아니면 내가 버려질까봐 두려워서, 나를 필요로 할 만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여성이기 때문에 더 완벽해야 하고, 아시안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진짜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았을 것 같다.
떠나기 전에 봤어야 할 것들이 있다.
나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여전히 함께 가고 있는가. 내가 "해야 한다"는 것과 "하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괄호 안에 들어가 있는가. 나의 책임감이 정말 내 책임감인가, 아니면 남이 기대하는 것을 내가 자동으로 받아 드린 건가. 마음이 상해가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나를 미루는 것이 정말 그들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그것은 나 스스로를 선택하지 않는 핑계는 아닌가.
가장 좋은 선물은 내가 나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진짜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아시안 여성이라면 더욱.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증명했다.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완벽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버텨낼 필요가 없다.
내가 떠나고 팀원들이 잘 찾아갔듯이, 당신이 떠나도 다른 사람들은 잘 찾아갈 거다.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결정해도 된다.
그게 진짜 강함이다. 그게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 같다.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기대 안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진 않나.
내가 부과한 책임감과 실제 책임감을 구분했는가
나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여전히 함께 가고 있는가
내가 "해야 한다"는 것과 "하고 싶다"는 것을 구분했는가
마음이 상해가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정말 그들을 위한 일인가
하나라도 체크가 안 된다면. 떠나갈 준비를 시작하면 좋겠다. 늦기 전에.
그리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당신을 따라와 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강하다. 당신이 떠나도 잘 찾아갈 거다. 그들의 강함을 믿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떠남도 함께 버티는 그들의 방식을 봐 주세요.
P.S. 요새 스레드에서 "잘 도망치는 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글쓰고 있다. https://www.threads.com/@multi.ha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