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나는 실패한 파운더였다.
시드 투자 30억 가까이 받고도 회사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미 좋은 결말이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래 버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실패를 확정 짓는 게 두려워서.
그 결과는?
나도 망가졌고, 팀도 망가졌고, 돈도 같이 탔다.
회사를 어렵사리 정리하고 남은 투자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결국 이 말을 들었다.
"이게 얼마나 큰 민폐인지 아세요?"
성공 못 시킨 죄인이라 할 말이 없으면서도, 속으로는 반발심이 들었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리스크 계산 없이 하시는 거 아니잖아요?' 하지만 결국 아이러니했다. 실패를 확정 짓지 않으려고 갈아 넣으며 버텼는데, 결국 민폐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책임감이 아니었다. 제 시간에 제대로 떠나지 못한 거였다.
이상한 사회다.
끝까지 버티면 대단하고, 그만두면 도망자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잘 떠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 성공할 때까지 버티거나, 실패자가 되거나.
그래서 사람들은 떠나야 할 때도 남아 있고, 이미 늦었을 때도 버틴다. 회사가 침몰하는데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을 얻으려 한다. 상사가 독이 되는데도 "조금만 더 참으면 달라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AI가 내 일을 대체하기 시작했는데도 "아직은 괜찮아"라며 눈을 감는다.
하지만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ChatGPT가 나온 지 2년. 이제 AI는 글을 쓰고, 코드를 짜고, 디자인을 하고, 분석을 한다. 내가 10년 갈고닦은 기술이 몇 개월 만에 누구나 쓸 수 있는 도구가 되는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은 더 버티려 한다. "나는 다를 거야." "내 경험은 AI가 못 따라와." "우리 회사는 아직 괜찮아."
하지만 정말 그런가?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 이미 레이오프를 당한 당신, 그리고 AI 때문에 내 자리가 흔들리는 걸 느끼는 당신. 지금 필요한 건 무작정 버티는 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떠날지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무작정 버티는 게 항상 책임은 아니다. 떠날 줄 모르는 게 더 큰 민폐다.
나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도망치는 법은 비겁함이 아니라, 손실을 키우지 않는 기술이다.
제때 떠나는 사람은 다음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한다. 망가지기 전에 떠나는 사람은 회복할 에너지를 남긴다. 명확하게 떠나는 사람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실패한 파운더로서, 그리고 그 실패에서 배운 사람으로서, 나는 이제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때로는 떠나는 게 당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매거진은 그렇게 '잘 도망치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나 자신을 지키면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그리고 다음을 준비하면서 떠나는 법.
도망이 아니라 전략적 이동이 되는 그 방법들을 함께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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