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 이후, 생각을 정리하는 법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고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법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레이오프) 통보를 받고 나면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제대로 안 된다.

쇼크. 분노. 억울함. 불안. 자괴감. 이런 감정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빠졌다 하는데, 그 사이에서 "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은 너무 버겁다.


근데 어느 순간, 그 물결이 조금 잦아들고 나면 생각이 시작된다.

이제 정말로 뭘 어떻게 하지?


일단, 당신은 정말 수고했다

본격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일단 이것부터.

당신은 정말 수고했다.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는 당신 탓이 아니다. 당신이 일을 못해서도 아니고, 당신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회사의 상황, 경제의 흐름, 타이밍의 문제였을 뿐.


내 탓이면 또 좀 어떤가. 그동안 출근하고, 일하고, 팀원들과 부대끼고, 마감 맞추고, 퍼포먼스 리뷰 준비하고, 승진 탈락하고, 그래도 또 버티고. 그거 다 수고한 거다.

아침에 알람 맞춰 일어나는 것도, 회의에서 말하는 것도, 메일 답장하는 것도, 다 에너지 드는 일이었다. 그걸 해냈다.


그러니까 일단, 당신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해주자.

무지성으로. 이유 없이. 그냥.

"나 진짜 고생했어. 수고했어."

이게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아도, 이거 하나 나자신에게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 숨통이 트인다.


비자발적 퇴사가 낮춘 자존감을 다시 세우기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 이후 가장 힘든 건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는 거다.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이었지?" "나는 누구지?"

명함 없는 나, 소속 없는 나, 다음 출근일 없는 나. 이 모든 게 낯설고 불안하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만 기억하자.

당신이 해낸 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런칭한 프로젝트

해결한 문제들

만든 결과물들

도운 사람들

배운 것들


회사는 당신을 내보냈지만, 당신이 거기서 한 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건 당신의 것이다.


그러니까 한번 적어보면 어떨까.

내가 지금까지 해낸 것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3년간 주간 리포트 100개 썼다", "신입 온보딩 도와줬다", "버그 200개 고쳤다" 이런 것도 다 세어보자.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당신이 명확한 사람이 된다. 회사가 당신을 놔줬어도, 당신은 여전히 뭔가를 해낸 사람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프레임워크

그렇게 자존감을 좀 세우고 나면, 이제 슬슬 생각을 정리할 때가 된다.

근데 막상 "이제 뭐 하지?"라고 생각하면 너무 막연하다. 생각이 온 사방으로 튄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게 생각 프레임워크다.


이건 뭔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생각할 질문들을 순서대로 정리해놓은 거다.

이걸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한 곳에 포커스된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조금씩 명확해진다


완벽한 답을 찾는 게 목표가 아니다. 그냥 생각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목표다.


세 가지 질문

프레임워크는 간단하다. 세 가지 질문.


1.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일단 현재 위치 파악부터.

나는 지금까지 뭘 해왔지?

뭘 잘했지?

뭘 좋아했지?

뭘 싫어했지?

이거 생각하다 보면 의외의 것들이 나온다. "아 나 사실 그 프로젝트 되게 재미없었구나", "이 툴 만지는 건 좋았네" 이런 것들.

급하게 답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자. 며칠에 걸쳐서 조금씩 추가해도 된다.


2. 나는 어디로 가고 싶나

지금 위치를 확인했으면, 이제 방향.

다음엔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지?

누구와 일하고 싶지?

혹은 당분간 일 안 하고 싶지?

여기서 중요한 건,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거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정도의 가설이면 충분하다. 나중에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냥 일단 방향만 잡아보는 거다.

그리고 솔직하게. "사실 좀 쉬고 싶어"도 완전히 정당한 방향이다.


3. 어떻게 거기까지 갈까

방향이 어렴풋이 보이면, 이제 첫 스텝.

뭘 배워야 할까?

누구를 만나야 할까?

어떤 경험을 쌓으면 좋을까?

언제까지 뭘 해볼까?

여기서도 완벽한 계획은 필요 없다. 그냥 다음 한 스텝만 생각하면 된다.

"일단 이번 주에는 이력서 업데이트나 해볼까", "다음 주에는 그 분야 일하는 친구 만나서 이야기나 들어볼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프레임워크를 쓰면 좋은 이유

이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뭐가 좋으냐면:

생각이 건설적으로 흐른다.


막연하게 "아 나 어떡하지" 하는 것보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를 생각하는 게 훨씬 긍정적이다.

"내가 뭘 잘못했지?"가 아니라 "다음엔 뭘 하고 싶지?"를 생각하게 된다.

생각에 포커스가 생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만 며칠 생각하고, "나는 어디로 가고 싶나"를 또 며칠 생각하고. 이렇게 하나씩 집중하니까 생각이 온 사방으로 튀지 않는다.

조금씩 명확해진다.


처음엔 막연했던 것들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조금씩 선명해진다. 완벽하게 명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이라도 덜 흐릿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급하게 답 찾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급하게 답 찾으려 하지 말자.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를 당하면 "빨리 다음 직장 찾아야지" 하는 조급함이 밀려온다. 그 조급함 때문에 아무 데나 지원하고, 아무 거나 하려고 하고, 결국 또 소진된다.


이 프레임워크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며칠일 수도 있고, 몇 주일 수도 있고, 몇 달일 수도 있다.

그거 괜찮다.


생각 정리하는 시간도 중요한 시간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당신 페이스로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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