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으고 싶은 자산은?
(2019년 여름의 회사와 회사 사이 사바티컬 동안에 쓴 글을 발굴해냈어요. 이 사바티컬이 끝나고서 두번째 회사를 창업했고 그 사업을 6년간 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회사에 떠나겠다고 말하고 나서 바로 한 일은 한국가서 3주 체류하는 비행기표를 끊은 일이었다. 처음 도착한 주말에는 부산의 부모님댁에서 주로 잠만 잤고, 주말 지나 월요일에는 제주도에 내려가서 바다뷰가 좋은 호텔에 찡박혀서 맛난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때 일어나고 하는 닷새쯤을 보냈다. 서울에서는 2주 있었는데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을 다 만났더니 2주 있는 사이에 도합 69명을 만났다고 내 캘린더기록이 알려주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중이 없었다. 친한 사람들 한국 갈때마다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동안 소식이 뜸해서 요새 뭐하는지 궁금한 친구들이 있었고, 전에 회사에서 리크루팅 하다가 잘 안된 혹은 나를 리크루팅 하시려다가 잘 안된 — 그야말로 스쳐지나간 사람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어색한 사람들과 언제 만나도 어제 만난 거 같은 사람들이 혼재했다. 문득 궁금해진 사람들을 다 핑 해봤고 감사하게도 거의 대부분을 다 만날 수 있었고 다들 나에게 각자만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아마 자신도 모르게) 내어주셨다. 사람들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도 멀리서 다니러 온 사람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에 후한 편이다.
어젠다도 없이 ‘그냥’ 사람을 만나는 일은 회사 다니는 동안은 타임푸어라서 정말 못했던 일인데 어쩐지 그게 막 하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자원이 갑자기 풍부해진 졸부가 된 느낌이라서, 금화가 가득찬 수영장 속으로 다이빙하는 스크루지 맥덕처럼 시간이라는 자원을 만끽하고 싶었기도 하고, 왠지 나의 다음 갈길은 희뿌옇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을 사람들 사이에 뿌려두는 데서 올지도 모른다 싶은 기분이 있었다.
사바티컬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주변에 사바티컬을 잘 했었기로 소문이 난 친구랑 커피를 마시며 물어봤다. 너는 사바티컬 동안 뭐하면서 지냈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는 걸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믿어서 그들을 만나서 그냥 뭐하는지 봤다고 했다. (이분은 그 사바티컬 동안에 아이도 낳고, 블록체인공부도 하고, 인맥도 만들어서 창업으로 돌아왔다.) 그 대화를 하면서 나도 사람들을 일단 많이 만나야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돌아온 이후로 미국에서도 아는 사람들을 다시 훑고 분식모임(샌프란시스코 동네에서 아는 한국분들과 한국길거리분식을 그리워하는 모임ㅋㅋ)을 다시 열고 소개를 받고 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사바티컬 동안은 단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서 식사 한번 하려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다른 목적의 여행을 다닐 때도 거기 사는 지인들을 연락을 해보는 걸로 하고 있다. 만나서 그냥 인사하고 커피 한잔만 하고 헤어졌다고 해도 그 분들에게서 받는 에너지와 inspiration이 있었다. (Inspiration의 좋은 한국말을 못찾았다. 아시면 제보 좀…)
목적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꽤나 어색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나의 무목적성을 미리 알려드려 바쁘거나 안내키면 전혀 걱정말고 스킵하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고, 만남의 목적을 굳이 찾으라면 자기 일을 즐기시는 그 분들의 그 “일”과 “삶”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궁금해서임을 주지해드리는 것도 필요하다.
약속을 정하고 만나면 대부분의 대화는 나의 근황, 그 분의 근황, 이런 피상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나는 주로 내 근황은 짧게 이야기 하고 그쪽의 사정을 들으면서 점점 가지를 쳐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편인데, 일단은 그쪽이 뭘하는지, 어떤 상황인 것인지, 어떤 즐거움이나 곤경이 있는지, 내가 도와줄 것은 없는지, 시너지가 날만한 다른 유무형의 자원이 내 근처에 없는지 내가 점점 더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제대로 된 포인트를 궁금해하면 더 열심히 궁금함을 채워준다.
이런 만남들에서 들은 랜덤한 이야기들은 내 머리속 어딘가에 고이 잠들어 있다가 어떤때 찡 하고 머리를 때리고 나올 때가 있다. 전혀 관계없는 두 사람이 시너지가 나겠다 싶을 때, 전혀 다른 두 아이디어가 사실은 요렇게 엮일 수 있겠구나 싶을 때, 내가 고민 하던 뭔가가 전에 이야기 들은 그거로 커버가 가능하다 싶을 때 등등…
그러고 보면 난 뭔가 막혔구나 싶을 때 그렇게 사람들을 짧은 시기 동안 많이 만나보는 일에 익숙하다. 대학원 1학년때던가 2학년때던가 미국 잡 마켓이 너무 나빠서 걱정하면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름 인턴을 하고 있던 그 전학기 하우스메이트 언니네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에 이르는 베이에리어를 돌면서 사람들이 소개해준 디자이너들과 리크루터들을 당면한 미래의 잡에 대한 리드는 붙잡을 것 하나 없이 “피드백을 받으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들으러” 만나러 다녔다. 1주일 있었는데 그때 빌린 렌터카에 700마일 찍은 기억이 난다. 그게 그때 잡 잡는 데는 별로 가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을 10여년 후 샌프란시스코에 이사왔을때 업계에서 다시 만나거나, 그때 사람을 만났던 예쁜 까페가 있는 동네에 살게 되거나, 그때 만나서 잘모르는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분을 내가 계속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가 후배가 그분 팀에서 오퍼를 받았을때 강추하거나 그런 일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주는 영감과 자극이 다른 어떤 소스보다도 더 훌륭하기 때문에, 당장의 타율이 좋지 않다고 해도 어떻게든 밑거름이 된다는 걸 긴 시간을 거쳐서 믿게 되었다.
얼마전에 친한 친구들이 내가 잘하는 것은 상상치 못한 조합의 사람들을 같이 모아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뻘쭘하게 만드는 모임도 많이 주도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는데, 이제는 그걸 능력이라고 한다. 100%는 아니고 50%라도 접점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서로의 다름을 보아넘길 수 있는 더 큰 공통의 요인을 준다고 한다. 이것도 내가 어젠다없이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더 가감없이 받을 수 있는 유무형의 정보와 신호의 덕이 아닌가 한다.
최근에 읽은 YCombinator의 샘 알트먼의 글에는 성공하려면 저평가된 탤런트를 찾아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냥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누가 나를 impress하는지 누가 나를 impress 못하는지 관찰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기대 없이 만났는데도 너무 코드가 잘 맞고 고무적이고 뭐라도 도와드리고 혹은 같이 일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온갖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도 만나서 밍밍한 인상만 받고 헤어진다. 미리 알 수 없으니 결국은 많이 만나보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많이 만나보려고 해도 내 정신 상태가 몸 상태가 에너지 레벨이 거기에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궁금함이라는 것이 정말로 genuine 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 나의 mental bandwidth가 필요한데 내가 너무 바쁘거나 번아웃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미팅을 해봤자 누구에게도 아무 것도 안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배우며 살고 싶다. 그러려고 해도 내 자신의 에너지 관리를 잘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스쿠루지 맥덕처럼 모아들이고 싶은 건 금화도 시간도 아니고, 내게 흔쾌히 inspiration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구나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올해 베이 에리어 분식 모임을 슬슬 또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