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는그럴만두하지
내가 엊그제 새벽 3시까지 만두를 빚어서 지금 며칠째 하루 두 끼를 만두로 먹고 있다. 나는 자타공인 만두마니아. 그래서 만두의 젠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만두는 세계의 여러문화에 골고루 분포되어 존재하는 “속재료를 넓게 편 탄수화물로 감싼 것” 중에서도 특히 밀가루 도우 같은 쫀득한 것으로 꽁꽁 싸매어 속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 것이다. 겉이 발효된 ‘빵’ 조직인 호빵이나 찐빵, 중국만두 바오 류와도 다르고 겉의 어느 부분이 틔여있는 메밀 지짐이 류와도 다르다. 특히 물만두과 만두국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차이가 엄청 크다.
동양권에서의 만두는 옛날 중국 삼국시대에 제갈공명이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 머리 N개를 바쳐야 한다는데 사람 머리 대신에 큰 만두를 빚어서 숫자를 채워 제사를 지내자 풍랑이 잠잠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 되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의 만두 페이지도 재미있으니 읽어보도록 하자. 만두의 발상지 중국에서의 분류가 만터우, 짜오즈, 바오즈, 샤오마이, 춘권 등이 있다는데, 내 사랑 ‘만두’는 짜오즈(=교자)에 한정하도록 한다. (이 나무위키를 읽다가 꽂혀서 올드보이 페이지까지 읽게 됨….)
어릴때는 만두는 집에 좋은 일이 있거나 가까이 살던 이모집에서 친척들이 많이 모이면 빚어먹는 음식이었다. 밀가루부터 치대서 반죽을 만들고 그걸 또 밀대로 얇게 펴서 만두피를 만든 뒤에 만들어놓은 속을 넣어 빚는 거라 사람 손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과 노력도 많이 드는데, 그때는 도움이 1도 안되는 주제에 만두를 먹는 게 그렇게 좋아서 엄마한테 맨날 만두 해 내라고 졸랐다. (그 업보로 요새 새벽 3시까지 혼자 만두를 빚나…) 유학중에도 오랜만에 집에 가면 엄마가 뭐해줄까 물었을때 맨날 만두해달라고 했다. 엄마 미안해….ㅠㅠ 우리집이랑 제일 가깝게 살아서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이 많은 우리 작은 이모네 사촌 언니는 어릴때 특이한 입맛의 소유자였는데, 만두는 싫어하지만 만두피는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 수제비를 먹으면 어떠냐고 하면 딱 잘라서 그게 같냐고 하는 뭔가 엄청 데카당트한 어린 미식가였다. 그 언니는 지금은 애 둘 낳고 유학와서 치과의사가 되신 형부와 미시간 시골에 사시는데 아마 요새는 만두피고 속이고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이다.
만두를 좋아해서 유학오고 나서부터 시판 냉동만두 중에서 마음에 드는 만두를 찾는 퀘스트에 들어갔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시판 냉동만두의 짓이겨진 고기속의 질감을 정말로 싫어한다. Processed meat의 질감을 혐오하고 나는 좀더 거칠거칠해도 좋으니 뭉개넣은 것이 아니라 썰어넣은 야채의 질감이 더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을 원했다. 매년 매번 실망하고 실망하고 하던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만두는 시카고 교외에 살 때 한국 음식점에서 빚어다가 냉동해놓고 무게를 달아 파시는 만두였다. 그걸 사 먹자고 한시간을 운전해서 만두 사러 다녀오곤 했지만, 시카고 시내로 이사하고 차는 사고 나서 폐차하고, 그러고 나서는 또 시애틀로 이사하면서 내 입맛에 맞는 만두를 먹기는 포기하고 그저 그런 냉동만두들을 몇년간 먹고 살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날 두두두둥! 한국장에서 착착착착 포개져 냉동되어 있는 만두피를 발견한다. “아 피가 이미 있으면 속만 만들어서 넣으면 되지 않을까” 개고생의 운명적 시작!
만두를 빚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만두피의 가장자리에 물을 살짝 묻혀가면서 피를 오무리는 것이 좋다는 것, 만두소를 얼마나 떠야 만두피에 맞을 거라는 것, 이미 만든 만두는 밀가루를 뿌린 쟁반에 놓았다가 마르기 전에 냉동실로 가야 한다는 등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다. 우리집 미국인이 군만두를 한끼 정도는 먹어도 그 이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데다가 만두 만들기도 서툴러서, 어느 시점부터는 만두는 내가 혼자서 만들거나, 손님들이 많이 올때 이벤트 성으로 만두피와 소를 내어놓고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빚으면 내가 물만두, 만두국, 군만두, 찐만두로 조리하여 내놓는 만두 파티 아이템이 되었다. 한바탕 먹고 나서 남은 것을 집에 가져가는. 그러던 것이 요새는 사람 초대하고 어쩌고 할 여유도 안되어서 그냥 혼자서 사분사분 만들어 냉동실에 쟁여놓고 먹고 가끔 여유되면 주변에 한팩씩 나눠주고 그 정도다.
내가 만드는 만두 속은 간쇠고기와 간돼지고기를 1:1로 하고 만두용 두부를 잔뜩 넣은 뒤 부추와 파를 잘게 썰어넣어 후추와 소금으로 간하고 달걀을 풀어 끈적함을 주는 것이 기본인데, 이번에는 거기다가 표고버섯, 애호박, 숙주도 넣었다. 당면은 개인적 취향으로 싫어해서 넣지 않는다. 만두속을 만드는 것도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걸리고 뭘 많이 썰고 그래야 해서 주말쯤에 한국장에서 만두속 재료를 사오면 냉장고에서 묵히다가 더 이상 묵히면 안될 것 같은 때에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일단 에너지를 좀 쟁이고) 만두를 만들기 시작하는 일이 잦다.
아무도 안 깨어 있는 한밤중에 야채들을 다지고 고기소를 뒤섞고, 특히 자리에 혼자 앉아서 만두를 하나씩 무념무상으로 빚어 내고 있으면 이게 만두명상인가 이게 만두열반인가싶다. 만두의 모양에 집중해서 만들다 보면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무의식의 바닥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평소에는 피하고 있던 주제의 중간과정을 다 무시한 결론이 갑툭튀 나오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물아일체 젠과 같은 느낌이 놀라울만큼 마음의 안정을 준다. 특히 만두가 하나하나 비슷한 모양을 갖추고 종횡으로 열을 갖추어 늘어서게 되는 모습은 허리 아픔과 육체적 피곤을 잊게 해줄만큼 흐뭇하다.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몇달에 한번 정도 해먹게 되는 나만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럭셔리 행복.
최근에 달리면서 들은 일본 소설 중의 하나에서 맥락과 관계없이 “집나간 엄마를 원망하고 잊었지만 지금도 만두 빚을때 주름은 어김없이 여섯개”라는 부분이 있어서 내가 만두를 빚을때는 주름이 몇개인지 세어봤더니 보통은 다섯개인 것 같지만 고르지도 않고 대중이 없다. 난 어릴때는 납작만두처럼 일단 반달모양으로 가장자리들을 접어 붙인 다음에 꾹꾹 눌러 프릴을 만드는 방식으로 했는데, 네모난 보자기처럼 접은 만두를 거쳐서, 샤오롱바오 같은 방식은 해동된 만두피로는 가장자리가 부스러져서 하기 힘드니까, 결국은 속을 제일 많이 담을 수 있는 것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이건 한쪽은 편편한데 다른쪽은 주름을 잡아가면서 보닛 모양의 볼록한 부분에 소가 들어가는 형태다. 교자에서 많이 쓰이는 형태.
만두 주름의 세계도 오묘해서 유투브로 보면 너무나 이쁘게 잎새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잉어지느러미 모양으로도 하고 그러던데, 난 그냥 소가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정하다니 나답다. 만두 주름을 잡아서 만두속에 든 소를 오므리고 있노라면 이게 참 회사일 같은 게, 일단은 만두소를 얼마나 떠야할지를 잘 가늠하기가 힘들다. 너무 적게 뜨면 만두피의 비중이 너무 높은 맛없는 만두가 되고, 욕심내서 조금이라도 많이 뜨면 만두가 제대로 안 다물려지거나 나중에 끓이다가 터지거나 한다. 만두피는 조금 당기면 (어딘가가 얇아지면서) 일단은 당겨져주지만 그것에 재미를 붙여서 막 소를 꽉꽉채우고 죽죽 당기면 결국 구멍이 난다. 그래서 만두 주름을 잡을 때도 한쪽에서부터 주름을 하나하나 잡아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대충 가주름을 만든 다음에 한꺼번에 봉합을 반죽을 꾹꾹 눌러줘서 해야 하는데 가주름을 잡고 있는 당시에는 속이 다 한꺼번에 확 터져버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컨데 일이 되어가려면 한꺼번에 다 봉합이 되어 예쁘고 통통한 만두가 나오지만 잘 안되려면 마지막 주름들이 수습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속을 다 꺼내고 다시 처음부터 오므리거나, 아예 만두피가 터지면 버리고 새로 만두피를 마련해야 한다. 그걸 처음부터 잘 가늠하는 것도, 가주름에서 봉합을 만두가 터지려 하기 전에 재빨리 솜씨좋게 해버리는 것도, 속이 너무 많이 들어갔을때 과감하게 덜어내는 것도, 다 다년간 만두를 빚어본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남이 설명할 수 없는 손맛이다.
만두는그만두지않지라고 말장난을 쳤지만, 만두를 예쁘게 만들게 된 것은 결국은 만두를 정말 많이 빚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보기 참혹할 모양으로 만들었지만, 만두를 좋아하는 힘을 바탕으로 못 생긴 것도 먹고 다시 빚고 또 다시 빚고, 많이 빚어서 얼려두고 먹고, 많이 빚어서 나눠먹고, 여럿이 빚어서 나눠주고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무 생각없이 빚어도 대략 균일한 모양의 만두가 나오게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재료를 슥슥 섞어도 간이 맞고 맛이 나게 되었다. 만두의 젠이 나에게 리마인드 해주는 건 그거였음 좋겠다. 좋아하는 힘으로 하는 일을 계속 그'만두'지 말라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