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sun Kim 김희선 Mar 21. 2019

5K + 10K

10+년간 카우치 포테이토로 산 달리기 혐오자는 어떻게 뛰게 되는가

지난 일요일에 난 헉헉거리고 중간에 조금 걷기도 했지만 그래도 personal record (11:59분/mile, 남들이 보면 너무 웃기겠지만 나는 스스로 자랑스러운 기록)로 5K 대회를 완주했다. St. Patrick’s Day를 기념해서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바닷가 공원 Crissy Field에서 소소하게 열린 아마추어 대회였다. 바닷가를 따라 쭈욱 뛰어갔다가 다시 갔던 길로 돌아오는 코스였고, 높낲이가 거의 없이 평탄한 쉬운 길이었다. 날은 3월 중순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여름처럼 따듯하고 해는 높았으며 바람도 거의 없었다.    

5K를 뛰어야겠다는 생각은 작년 연말에 퍼스널 플래닝 워크샵을 하는 도중에 나왔다. 남편과 둘 다 요 몇년 사이 살이 쪄서 뭔가 카디오 운동을 해야하는 숙제가 늘 있는데,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남편은 이제 달리는 것은 꺼려하며 수영을 하기로 하고, 난 수영이 번거로워서 싫다며 운동화만 신고 나가면 될 거 같은 달리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예년처럼 올해도 새해 결심에 “5K를 적어도 두 번은 한다”가 들어가게 된다. 미리 예약과 예매를 해놓지 않으면 계획이 영 지켜지지 않는 걸 몇년이나 봐온터라, 그 때 이미 3월쯤에 뛸 수 있는 5K를 찾아서 이 St. Patty’s Day Event를 점찍어놓았다. 그 때의 생각으로는 내가 워낙에 거의 십년 넘게 뛴 적이 없으니까 다시 뛰게 되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3월의 5K는 대충 걸어서 들어오고, 대신 6월달쯤에 두번째 5K를 뛰면서 제대로 쭈욱 뛰어서 들어와보자고 생각했다.


새해 결심을 그렇게 해놓고도 사실 바로 뛰기를 시작하게 되지도 않았다. 연초에 남편이 출장가는 바람에 싱글맘 모드로 애 학교까지 운전해서 데리고 가는 게 아침 일과가 되어서 실제로 아침에 뛰기를 시작한 것은 1월이 2주일이나 흐르고 난 1월 14일이었다. 핏빗과 스트라바의 기록을 보니 그때 나는 1.81마일을 평균 14:26 미닛 마일로 걷고뛰었고 트래킹 한 거리는 25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그냥 운동화를 신고 귀에 에어팟을 꽂고 나가서 일단 30분만 밖에서 보내는 걸 목표로 했다. 일단은 워밍업을 해야 한다며 처음 10분은 걷고, 그 다음 10분은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슬슬 뛰어보고, 마지막 10분도 걷자고 하고 나갔다. 뛰기로 한 10분도 30초 뛰고 4–5분 걷고 또 45초 뛰고 4–5분 걷고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30분을 나가서 걸으면 친구들과 작년부터 하고 있던 1주에 4번하는 카디오 챌린지의 1칸은 채울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역시 하도 오랜동안 해본 적이 없는 게 뛰기라 처음에는 한 블럭 뛰기도 힘들었다.


아침에 우리 어린이와 남편이 7시에 땡 집에서 나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 함께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조금만 더 있다 나가야지 하면 핑계가 생기고 늘어지고 침대로 도로 돌아가 조금 더 자겠다고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니까. 우리집 개가 아침과 저녁에 끙아를 하러 밖에 나가서 좀 산책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개의 끙아 산책과 내 뛰는 것을 같이 합쳤다. 어차피 밖에 데리고 나가야 할 것, 같이 나가서 둘이서 빠르게 걷고 조금 같이 뛰고 들어오기로. 개가 중간 중간에 멈춰서 지형지물에다가 영역표시를 하는 동안은 나도 같이 기다리고, 아님 엉덩이를 내리고 꼬리는 치켜들고서 끙아를 하면 주워서 갖다 버려야 해서, 그 짧은 시간들이 숨을 좀 고를 수 있는 핑계가 되어주기도 했다. 11살 된 우리집 할아버지 개는 한동안 내 뛰는 걸 좀 따라가주더니 한번 가면 뛰는 거리가 2.5마일을 넘어가면서부터는 같이 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요새는 늙은 개의 무릎에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나도 굳이 데리고가지 않기로 했다.


집에 핏빗이 널려있는데도 그동안 쓰지 않다가 이번에 갑자기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핏빗의 GPS를 켜면 뛰는 동안 어디를 뛰는지를 트래킹 해서 뛴 거리와 평균속도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뛰고 나면 예쁘게 지도 위에 내가 뛴 궤적을 보여주는데, 아무 것도 아닌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다. 지도위의 궤적과 내 달리기 통계는 Strava가 더 정교해서 핏빗과 스트라바를 연동해 놓고 나니 보면 볼 수록 재미가 났다. 달린 거리, 평균 속도, 달린 시간, 고도, 칼로리, 평균 심박수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이 아니라 그 각각에 대해서 시간축을 놓고 그래프를 그려준다거나 오늘의 달리기가 다른 날들에 비해서 어땠나 보여준다거나 하는 데이터 놀이가 내일도 다음번에도 또 뛰어보고 싶게 했다. 심지어는 새로운 도시의 지도 위에 궤적을 남겨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꽁꽁 얼어붙은 레이캬빅의 바닷가를 <Don’t Stop Me Now>를 들으면서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달렸고, 길이 너무 미끄러웠던 헬싱키에서는 적어도 빨리 걷기라도 했다. 어느 일요일에는 식구들에게 Lake Merritt을 내 스트라바에 꼭 넣어봐야겠다고 선언하고 식구들을 다 끌고 그 호수가 6킬로미터를 뛰고 걸었다.


핏빗 말고도 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친구는 에어팟이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뛴다는데, 나는 음악은 금방 질리고,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뛰고 있다. 재미있는 내용을 들으면서 뛰면 내용이 궁금해져서 뛰면서 오는 괴로움을 잊고 귀를 기울이게 되어서 좋다. 밝고 명랑한 내용이면 잘 뛰어지고, 음울하고 어두운 내용이면 좀 발이 느려지는 것 같다. 일과 관계된 비지니스 북은 책의 내용이 뛰고 있는 러닝 루트과 조합이 되어버려서 <플랫폼 레볼루션>의 마켓플레이스 런칭 방법들을 다시 읽어도 그 부분을 들으면서 뛰었던 Lake Merced 트레일이 생각이 나고 그때 헐떡거렸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최근에 지루하지 않게 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책들은 <플랫폼 레볼루션> <마티네의 끝에서> <경험 수집가의 여행> <심미안 수업> <라면의 황제> <죽여마땅한 사람들> <어번던스> 등이 있었다.


1월에는 우리집에서 엠바카데로까지 헥헥대고 가서 바닷물만 보고 돌아오던 루틴이 엠바카데로까지 가서 엠바카데로를 타고 몇 블락을 올라갔다가 돌아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페리 빌딩 중심에서 건널목을 건너 마켓 스트리트로 돌다가 Exploratorium까지 올라가서 트랜스아메리카를 끼고 돌기 시작했다. 점점 뛰는 비율이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뛰다가 걷다가 그러는 정도였다. 3월 중순에 잡아놓은 5K를 제대로 뛰겠냐고 걱정하고 있던 찰나였다.


어느 느긋한 주말 오후였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친구의 그 포스팅에 꽂힌 것이. 친구 D가 몇년전 자기가 처음 베이 에리어로 이사올때 금문교를 뛰어 갔다오는 이 대회를 미리 사인업 해놓고 두려운 마음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꾸어 이사왔다고 하는 로맨틱한 이야기를 하고, 올해 오랜만에 또 그 10K 레이스를 사인업 했다고 했다. 처음 그 포스팅을 보고는 그 레이스의 5K를 뛰어볼까나 생각했는데, 금문교 코스는 10K와 10mile 코스만 있다고 했다. 거기 꽂혀서 10K를 덜컥 사인업을 했네. 그게 대회가 딱 6주 남은 시점이었다. 주최측마저도 너무나 샌프란시스코스러운 샌프란시스코 브랜드인 리바이스의 Levi’s Presidio 10K.


아직 5K도 안 뛰어본 주제에 10K를 사인업하다니 바로 후회가 되었지만, 한번 지른 것 안되면 걸어서라도 들어올 수 있겠지 하고 배짱을 내밀기로 했다. 친구들과 쓰는 슬랙에도 바로 보고(!)하고 채널을 하나 따로 팠다. 나의 이 맨땅에 헤딩하기를 보고 웃으시라고.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그 전날까지도 5K 레이스를 어떻게 뛰나 걱정하던 것은 싸악 잊히고 5K는 만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스타트업 동네의 스케일링이라고 해야할려나? 1M 매출을 올리느라고 고심하는 팀에게 매출 목표를 10M으로 상향 조정해주어 버리는… ㅋㅋ


그리고 서포트그룹의 마법은 여기서도 또 발휘가 된다. 스트라바의 친구들이 Kudos (페북의 좋아요 같은 이모지)를 보내어주는 것도 큰 힘이 되었지만, 뛰고나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슬랙 채널에다가 미주알고주알 보고할 수 있고 친구들이 기어부터 사라고 뽐뿌질을 해주는 것이 정말 원동력이 되었다. 러닝 재킷을 두개, 러닝 슈즈를 3개 샀고 ㅎㅎ, 물병을 메고 뛸 수 있는 벨트와 무릎을 잡아주는 무릎관절 보호대를 질렀다. 2주 후 지난 주에 7일간 나흘을 뛰었는데, 금요일에는 이제까지 제일 멀리 쉬지 않고 뛴 거리인 4마일을 뛰었고, 일요일에는 그 5K 레이스를 뛰었다.


이제 10K까지 또 딱 4주가 남아있다. 가족휴가 가서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 오르막길 뛰는 코스도 연습을 해야하고 꾸준히 마일리지도 매주 0.5마일씩 늘려야 한다. 레이스 자체에 대해서는 자신이라고는 1도 안생기지만, 매번 뛰고 나서 친구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수다떠는 재미 때문에라도 계속 연습을 하긴 할 거다. 요새는 아침에 뛰고 샤워하고 커피내려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루틴이 된 나머지 무슨 일이 있어서 그 루틴이 안 지켜지면 무척이나 낙망한다. 루틴의 부작용이라고 해야할까?

작가의 이전글 무지는 나의 초능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