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자기 보호를 시작한 신호
받은편지함에 읽지 않은 이메일이 쌓여간다. 제목만 봐도 부담스러워. 발신자만 봐도 무거워. 열어봐야 한다는 건 아는데 열 수가 없어. 내일 봐야지. 나중에 봐야지. 시간 날 때 봐야지. 근데 그 나중이 안 와.
처음엔 한두 개였어. "바빠서 못 봤어", "잊어버렸어". 그러다 보면 나중에 보면 되지. 근데 그게 쌓이는 거야.
읽지 않은 이메일 5개, 10개, 20개. 어느새 빨간 숫자가 두 자리 수가 돼. 그러면 더 열기 싫어져.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어. 다 확인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 그래서 또 미뤄. 악순환이야.
읽지 않은 이메일은 받은편지함에만 있는 게 아니야. 머릿속에도 있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도 생각나.
"아 그 이메일 아직 안 봤지". 주말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월요일 되면 또 쌓일 텐데". 묵직하게 짓누르는 거야.
회의 중에도, 다른 일 하는 중에도, 한켠에 있어. 다 처리하지 못한 것들. 놓치고 있는 것들. 대답하지 않은 것들. 집중이 안 돼. 마음이 불편해. 죄책감이 들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 "그냥 열어보면 되잖아", "읽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근데 이건 무심하거나 게으른 게 아니야. 오히려 이미 너무 많이 감당하고 있어서 더 이상 받아들일 공간이 없는 거야. 뇌가 자기보호 하는 거거든.
"이거까지 열어보면 나 무너질 것 같아", "이거까지 처리하면 나 못 버틸 것 같아". 그래서 안 여는 거야. 의식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야. 뇌가 알아서 셧다운하는 거야.
이메일뿐이 아니야. 슬랙 메시지도, 카톡도, 문자도. 읽지 않은 게 쌓여. 답장하지 못한 게 쌓여. 처리하지 못한 게 쌓여. 할 일 목록도 마찬가지야. 밀린 업무도 마찬가지야. 다 쌓여가는데 손을 못 대는 거야.
이건 시간관리 문제가 아니야. 용량 문제야.
컴퓨터 저장공간이 100% 차면 어떻게 돼? 새로운 파일을 저장할 수 없잖아. 프로그램이 느려지고, 뻗고, 다운되잖아. 사람도 마찬가지야.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이 있어. 그게 100% 차면 더 이상 못 받아들이는 거야.
업무량이 많아서일 수도 있어. 스트레스가 커서일 수도 있어. 번아웃이 왔을 수도 있어. 환경이 안 맞아서일 수도 있어. 원인이 뭐든, 용량이 찼다는 신호야.
"나는 왜 이것도 못 해", "다른 사람들은 다 잘만 하던데", "내가 무능한 건가". 아니야. 네가 무능한 게 아니야. 네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거야.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일 가능성이 커.
읽지 못하는 이메일이 계속 쌓인다면, 그게 몇 주째, 몇 달째 반복된다면. 이 상황이 나아질까? 업무량이 줄어들까? 스트레스가 줄어들까?
솔직하게 대답해봐. 지난 몇 달 동안 나아졌어? 아니면 점점 더 많이 쌓였어? 환경 자체를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이메일 열기가 무서워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나올 수 있게 퇴사이직 전략키트를 만들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힘든지, 내가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떤 건지, 어떻게 준비해서 나갈 건지. 생각을 정리하고 단단하게 나올 수 있게. https://tumblbug.com/quit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