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노동자의 연료가 바닥났을때
회의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얘기가 나와. 예전 같으면 궁금했을 거야. "어떻게 할 거지?", "재밌겠는데?", "나도 해보고 싶은데?". 근데 지금은 그냥 피곤해. 아무 감정이 안 일어나. 관심이 없어진 거야.
회의에서 나오는 얘기. 내가 맡은 프로젝트. 옆팀이 하는 것. 새로운 기술. 업계 트렌드. 뭘 들어도 그냥 평평해. "아 그렇구나" 하고 끝이야. 더 알고 싶지 않아. 파고들고 싶지 않아. 시도해보고 싶지 않아. 일말의 호기심도 남지 않았어.
번아웃의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어. 피곤한 것, 짜증나는 것, 집중 안 되는 것. 근데 나는 이게 제일 무서웠어.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진 거. 예전의 나는 궁금한 게 많았거든. 새로운 거 보면 신기했고, 배우고 싶었고, 해보고 싶었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다 사라진 거야. 뭘 봐도 "그래서?"만 떠올라. 일말의 호기심도 내 속에 남아있지 않구나 싶었을 때. 그게 진짜 경보였거든.
이건 일을 잘 못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반대야. 일은 여전히 해. 제대로 해. 시키는 것도 하고, 맡은 것도 처리해. 근데 그게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거야. 관심 없이, 에너지 없이,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야. 마음은 이미 떠난 거지.
지식노동자한테 호기심은 연료야. 호기심이 있어야 배우고, 배워야 성장하고, 성장해야 더 잘할 수 있어. 호기심이 있어야 문제를 파고들고, 해결책을 찾고,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 호기심이 없으면 공회전하는 거야. 아무리 경험 있고 잘해도, 호기심 없이 일하면 그냥 돌아가기만 하는 거거든. 나한테도, 일한테도.
처음 이 일 시작했을 때는 달랐어. 궁금한 게 많았어. 배우고 싶은 게 많았어. 시도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 잘하고 싶었어. 성장하고 싶었어. 그때는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주말에도 관련 책을 찾아 읽었어. 커피 마시면서 동료랑 아이디어 얘기하는 게 재밌었어. 그 불꽃이 언제 꺼졌을까.
한순간에 확 꺼진 게 아니야. 서서히 꺼진 거야. 프로젝트 하나 하면서 조금 시들고. 또 하나 하면서 조금 더 시들고. 팀 분위기에 지치면서 조금씩 꺼지고. 매니저랑 안 맞으면서 조금씩 식고. 그렇게 몇 달, 몇 년 지나면서 완전히 꺼진 거야. 이제 재도 안 남았어.
이게 일시적인 슬럼프인지 진짜 신호인지 헷갈릴 수 있어. 슬럼프는 쉬면 나아져. 휴가 갔다 오면 다시 호기심이 생겨. "아 저것도 해보고 싶다", "이것도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근데 쉬어도 안 생긴다면? 휴가 갔다 와도 여전히 평평하다면? 몇 달째 이렇다면? 그건 슬럼프가 아니야. 환경을 바꿔야 할 때야.
처음엔 내 문제인가 싶었어. "내가 의욕이 없나", "내가 성장 의지가 부족한가", "내가 게을러진 건가". 근데 아니었어. 이 환경이 나를 소진시킨 거야. 나한테 맞지 않는 일을 하고, 나한테 맞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고, 나한테 맞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서서히 불꽃이 꺼진 거야. 내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맞지 않는 거야.
호기심이 사라졌다고 해서 영원히 그런 건 아니야. 다른 환경에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어. 나한테 맞는 일, 나한테 맞는 방식, 나한테 맞는 사람들과 일하면. 불꽃이 다시 켜질 수 있어.
호기심이 증발한 사람들이 다시 불꽃을 찾을 수 있게 퇴사이직 전략키트를 만들었어요. 내가 언제 살아있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불꽃이 튀었는지,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아갈 수 있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단단하게 나올 수 있게. https://tumblbug.com/quitwell
Photo by Dawn McDonald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