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중헌디, 퇴사에도 필요한 이 질문

스탠포드 MBA 에세이에서부터 20년 뒤의 퇴사에까지

2000년대 중반, 나는 스탠포드 MBA 지원서를 붙잡고 며칠째 씨름 중이었다.

다른 MBA 학교들은 에세이 질문이 여러 개인데 스탠포드는 간지나게도 딱 하나였다.

"What matters most to you?"
뭣이 중헌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멋을 부렸다. 이왕이면 '성숙하고 세련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Making meaningful impact" 같은 말을 썼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제일 그럴싸한 답.


물론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잘됐다 싶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저 질문에 답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었으니까.


20년 뒤, 그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그 후로 테크 업계에서 14년을 굴렀다. 스타트업을 만들고, 망하고, 다시 만들었다. 남의 회사에서도, 내 회사에서도 "의미"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꺼내며 살았다.

팀을 이끌고, 지표를 보고, 펀딩을 받고. 매일같이 의미 있는 일을 하려 노력했는데 어느 날 문득 — 내가 진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그때 떠올랐다. 20년 전 그 질문.

What matters most?

그때는 입학처를 설득하려고 썼던 답인데, 이번엔 나 자신한테 물어야 했다. 근데 막상 물어보니까 — 바로 안 나왔다. 20년 전이랑 똑같이.


퇴사 이유와 퇴사 계기는 다르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한테 이유를 물어보면 다들 비슷하게 말한다.

"상사가 너무 힘들어서요." "회사 방향이 저랑 안 맞아서요." "번아웃이 왔어요."

근데 그건 퇴사 이유가 아니다. 계기다.

계기는 "더 이상 못 있겠다"는 신호다. 이유는 다르다. "나한테 진짜 중요한 게, 여기선 안 된다" — 이걸 말할 수 있어야 이유가 된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채 나가면 다음 회사에서 똑같은 계기를 또 만난다. 환경만 바뀌고 나는 그대로인 채로.

퇴사 전에 이 질문 한 번만 해보면 된다.

"나는 뭘 위해 나가는 건가?"

한 문장으로 못 쓰겠으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거다.


연봉이 중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퇴사하면 연봉을 올려야 한다고 다들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연봉은 숫자로 측정되는 것들만 해결해준다.

내 주변에 연봉 30% 올려서 이직한 사람들 꽤 있다. 1년 뒤에 절반은 또 나왔다.

뭣이 중헌디 — 를 한 번만 진지하게 물어보면 사람마다 답이 다르다. 어떤 사람한텐 시간이 중하고, 어떤 사람한텐 배움이 중하고, 어떤 사람한텐 그냥 인정받는 느낌이 중하다. 연봉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

그게 뭔지 모른 채로 연봉만 올려서 나가면 — 돈은 생겼는데 여전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남는다. 그 느낌이 뭔지 모르니까 또 계기를 기다리게 된다.


스탠포드 MBA는 떨어졌지만

그 에세이 질문은 MBA보다 훨씬 오래가는 숙제를 남겼다.

나는 지금도 그 질문을 써먹고 있다. 다만 요즘은 지원서가 아니라 내 플래닝 노트 위에서. 매년, 매 분기, 때로는 매달. 어떤 해엔 사명이 1순위였고, 어떤 해엔 건강이었고, 어떤 해엔 그냥 평온이었다.

정답이 자꾸 바뀌는 게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퇴사를 앞두고 있다면, 이 질문을 한 번 꺼내보길 권한다.

What matters most to you?

뭣이 중헌디. 지금의 나한테.


그 답을 쓰는 걸 도와주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테크 업계 24년, 창업 두 번, 8개의 회사를 거친 끝에 내가 직접 필요해서 만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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