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퇴사할 때 엉뚱한 걸 고민하는 이유

중요한 걸 고민할 때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나는 6개월을 날렸다.

결정을 못 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근데 자꾸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보스한테 뭐라고 말하면 그래도 체면이 살까. 팀원들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마지막 날 어떻게 인사하지.

하루하루 말라가면서도 당장의 바쁨에 치여서, 그 생각을 진행시키지 못한 채 그냥 흘려보냈다. 6개월을.


핑계는 항상 그럴듯했다

그때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시기엔 이런 식이었다.

주요 고객사 프로젝트만 마무리하고. 보너스만 받고. 이제 휴가 다녀와서. 내 성과만 제대로 만들고 나서.

온갖 핑계로 1년 넘게 나가야 할 순간을 미뤘다. 그리고 매번 핑계는 그럴듯했다. 실제로 프로젝트는 중요했고, 보너스는 아까웠고, 휴가 직후엔 쌓인 일이 있었다.

근데 그게 끝난 적이 없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보너스를 받으면 다음 보너스가 보였다.

타이밍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왜 엉뚱한 걸 고민하는가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비슷한 걸 고민한다.

사직서 문구. 팀장한테 언제 말할지. 보너스 타이밍. 마지막 날 인사. 동료들 반응.

이것들의 공통점이 있다. 답이 나온다. 고민하면 결론이 생긴다. 끝이 있다.

근데 진짜 질문은 그렇지 않다.

나는 왜 나가는 건가. 나가서 뭘 다르게 살 건가. 나한테 지금 진짜 중요한 게 뭔가.

이건 고민한다고 바로 답이 안 나온다. 불편하다. 흐릿하다. 그래서 자꾸 답이 나오는 것들로 도망간다.

내가 6개월 동안 보스한테 어떻게 말 꺼내지를 고민한 것도, 1년 동안 핑계를 댄 것도 — 지금 생각하면 같은 이유였다. 진짜 질문이 무서웠던 거다.


뭣이 중헌디가 흐릿하면

보스한테 멋있게 말하는 법을 6개월 고민했는데, 실제로 그 대화는 10분 만에 끝났다. 팀원들 반응도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마지막 날 인사는 다음 날이면 다들 잊었다.

내가 6개월 동안 고민한 것들은 실제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내가 왜 나가는지, 나가서 뭘 할 건지 — 그걸 나한테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선명했으면 보스한테 할 말도, 팀원한테 할 말도 자연스럽게 나왔을 거다.

핑계도 마찬가지다. 나가서 뭘 할 건지가 선명하지 않으니까, 떠날 이유보다 남을 이유가 항상 더 많아 보였던 거다. 뭣이 중헌디가 명확한 사람은 핑계가 안 생긴다.


퇴사 전에 딱 한 번만

사직서 쓰는 건 5분이면 된다. 보스한테 할 말은 그 자리에서 나온다.

근데 그 전에 이것만 한 번 써보길 권한다.

"나는 ____가 중요하다. 근데 지금 여기선 그게 안 된다."

빈칸 하나다. 이게 채워지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이게 안 채워진 채로 나가면 — 나가는 순간은 후련한데 한 달 뒤부터 흐릿해진다.

엉뚱한 걸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게 아니다. 그게 인간적인 거다. 근데 그 에너지를 이 질문에 한 번만 써봤으면 한다.

뭣이 중헌디. 지금의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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