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제값을 치릅시다
대학원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하고는 여행을 종종 갔다. 가난한 대학원생으로 살다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너무 신기해서 그동안 못하고 살았던 여행을 몰아서 했다. 그 중의 하나가 산타페. 산타페에 대해서는 아티스트 조지아 오키프가 작품활동하던 곳이란 것과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사진집 배경이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고 전혀 사전 지식 없이 갔다가 재미있게 다녀왔다. 다른 건 다 가물가물한 그 여행의 기억 속에서, 산타페 중앙 광장에서 열린 야외 아트 마켓 같은데서 살까말까 한참 고민했던 인디안 할아버지가 자기 딸이 만든 거라며 팔던 래리엇 목걸이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래리엇은 본래 목동이 소를 몰때 쓰는 올가미를 뜻하는 단어로, 둥글게 이어지지 않고 일자나 올가미형으로 목에 돌려감는 형태의 목걸이이다. 그때 그 래리엇은 검붉은 색의 갖가지 크고작지만 유니크한 비드로 길고 아름답게 꿰어져 있고 양 끝은 신비로운 검은 큰 깃털로 마감되어 있었다. 살까말까 얼마나 망설였던지…. 하지만 그때 돈으로도 싸지 않던 그 가격은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나에게는 너무 큰 금액이라서 결국 못사고 말았다. 그때의 내 생각은 그랬다. 나도 눈썰미와 미적감각은 없지 않으니까 내가 비드를 사서 직접 꿰면 되지 않을까?
그 후 몇년동안 기회될 때마다 독특한 비즈를 사서 모으고, 꿰어서 목걸이로 만들어 보려고 시도도 여러 번 해봤다. 근데 일단은 그만한 비즈를 내가 소량씩 사서 모으는데 드는 돈이 결코 적지 않고,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내 솜씨로 만든 것은 어딘가 계속 좀 모자라 보였는데다가, 비즈를 꿰느라 바늘들고 집중하고 있느라 허리가 나갔다. 그래서 회사일로 바빠지자 신발상자에 잔뜩 모은 비싼 비즈들은 다 크래프트 열심히 하는 후배에게 물려줘버리고, 난 그 후로도 15년째 그 때 그 래리엇 같은 걸 찾아 헤메이고 있다. 왜 그때 안 샀을까 계속 후회하면서….
비슷한 건 화장과 패션. 대학교 1학년 때 열심히 화장하고 패션트렌드들을 따라가보고서 심드렁해졌다. 내가 좀만 신경쓰면 이럭저럭 할 수 있구나, 역시 디자인과를 공으로 다니는 건 아니야. 그럼 귀찮으니까 지금은 확 놔버리고 나중에 필요할때 따라잡겠다. 힐러리 클린턴도 대학때 사진 보니 요새 말로 패알못이지만 남편이 주지사 당선되고 나서 확 스타일 바꿨다는데 뭐. 그리고 그렇게 15년 20년이 흘렀다. 패스트포워드 슉슉. 나는 이제 화장이고 패션이고 트렌드 전혀 모르고 따라갈 수도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패션 포기자가 되어 있다. 그때부터 화장이고 패션이고 관심있어하고 요래조래 꾸준히 해보던 친구들은 그때는 공대 여학우들이서 꾸민다고 꾸며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달인들이 되어서 다들 우아하게 잘 차려입고 다니신다.
미술관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고서도 그랬다. 저거랑 내가 똑같이 그려서 집에 걸 수 있어. 근데 말이죠. 일단은 예술적 의미와 상징성 같이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서라도, 껍데기만이라도 그렇게 물성이 나오는 기술적인 실행 자체가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서 그 색과 그 색이 그런 칼같은 빳빳한 경계선으로 만나게 되는 거더라니깐. 그리고 뭣 보다도 내가 그걸 그리려고 화구들을 챙겨서 잡고 앉지를 않아.
하면 될 것 같이 보이는 거랑, 진짜로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도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한번 잘 하는 것과 그걸 계속해서 잘 하는 것도 다르다.
그 때 그 산타페에서 봤던 래리엇의 가격에는 장인의 시간과 노하우와 비즈및 깃털을 고르는 안목과 그 전까지 만들어졌던 다른 수많은 래리엇들의 시행착오에서 비롯된 개선이 다 들어있는 것이니 오히려 싼 거였다. 내가 그 후로도 십수년을 후회하면서 찾아헤맬 것을 생각하면 정말 싼 가격이었다. 매년 매계절 매일, 패션을 신경써서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은 내 친구들은 그 안목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는 자기에게 더할나위없이 어울리는 것들을 취향에 맞게 갖춰입는 우아한 사람들이 되었다. 성의없이 똑같아 보이는 연작을 내놓는다고 생각했던 현대미술 화가는 사실은 그 주제를 변주하고 심화하면서 경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요새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쌓인 시간이라는 게 제일 무섭다고. 차곡차곡 쌓는 노력에는 복리가 붙어서 처음에는 저게 뭐야 내가 맘 먹으면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지 하던 것이 어느새 저 높이 올라가 있고, 어느새 내가 따라잡을 생각도 하지 못할 뭔가가 되어 있다고. 내가 비싸다고 생각하며 시간이나 돈을 지금 지불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의 긴 세월에 걸쳐서 나에게 복리 붙은 후회로 돌아올 거라는 것도. 엉덩이 붙이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깊이 파고들었던 것들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그러니 나도 지금부터라도 풀뜯는 소처럼 묵묵히 뭐든 쌓아야한다고. 지금으로부터 수년후에 아 그때 2019년에 시간이라는 가격을 지불하고 쌓아놓을걸 그랬다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작성일 4/29/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