뛸 수 있는 최장시간 45초에서 시작해서 하프마라톤을 뛰게 되기까지
내가 하프마라톤의 13.1마일을 뛰다니 이게 실화냐. 나, 1월에만도 뛰다가 꼭 죽을 것 같아서 얼마나 뛴 걸까 보면 45초 뛰어있던 사람. 어느새 2시간 48분을 뛸 수 있게 되었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속도나 퍼포먼스가 아니라 느리게 뛰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뛴 총시간에 감격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은 하프마라톤을 어떤 기록으로 얼마나 잘 뛰었나 보시는데, 난 이 거리 커버리지(13.1마일=21킬로미터)와 이 지속시간(2시간 48분)이 내 비루한 몸뚱이로 가능했다는 것이 아직 안 믿어져서 그렇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면, 땀나는 것 숨가쁜 것이 싫어서 평생 달리기는 쳐다도 보지 않고 살아온 올곧은 인생 40여년. 에너지 넘치던 10대때에도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이나 심지어는 체력장에서조차 600미터 달리기나 800미터 달리기를 선생님이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바로 포기하는 아이였다. ("선생님 저 그냥 0점 받을래요.") 운동이래도 요가나 웨이트리프팅을 가끔 가뭄에 콩나듯 했으면 했지 하프마라톤은 고사하고 그냥 달리기조차 언감생심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누운 포지션이 세상 제일 좋은 카우치 포테이토 그게 나였다. 이렇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작년에 퇴사하고 사바티컬을 가졌을때, 스타트업 코파운더로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린 3년간이 남겨놓은 것은 수면의 절대부족과 그로 인한 고혈압과 야금야금 15파운드나 찐 살이었다. 의사가 카디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른지 몇년이나 되었지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다가, 그래도 올해 2019년을 시작하면서는 올해 목표로 5K를 두 번 뛴다고 써넣기는 했다. 써넣으면서도 "아이고 이게 되겠나 올해는 다른 해랑 뭐가 다를까"라며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를 의심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가 작년과 그 이전의 해들이랑 달랐던 것은, 올해는 나에게 상뽐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서로 상, 뽐뿌질 뽐, 모일 회 자를 쓰는 상뽐회에 대해서는 여기를: 상뽐회라는 모임이 있다) 이제는 내 인생의 Board of Directors라고 부르는,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서로의 근황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업데이트하고 서로 응원을 주고받는 랜선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그들과의 상호작용이 없었더라면 올해도 다른 해와 전혀 다를바 없이 연말에 "내가 그럴줄 알았어"라며 기계적으로 5K를 뛰겠다던 목표를 내년으로 카피앤페이스트만 했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뛰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도 정작 길에 나서기까지 한두주가 걸렸다. 게다가 처음 뛰어보고서는 너무너무 못뛰는 내가 스스로 너무 웃겨서 친구들에게 같이 웃자고 농담조로 챗을 보냈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같이 웃어주고 한마디씩 보태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 다음 번에도 뛰고 나서 보고(?)를 하고 급기야는 뛰고 나면 Fitbit에서 Strava로 들어간 런 데이터 스크린샷을 찍어서 이 랜선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맵에 그려져서 나오는 나의 러닝 루트랑 찍혀져 나오는 속도며 시간이며 하는 것들이 재미있어서 반응을 이모지로(ㅋㅋ) 열광적으로 해줬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뛰겠다고 말을 해놓고 안뛰면 면이 안서서 뛰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친구들과 내가 뛴 걸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주일에 두세번은, 무척 느리고 오래 뛰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뛰기는 뛰게 되었다.
아직 5K도 뛸수 있을까 없을까 싶을때에 몇달 남은 10K 대회에 등록을 해버린 것도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를 뛰어서 넘어갔다가 오는 프리시디오 10K 대회가 그렇게 풍경이 멋지다는 친구의 뽐뿌질에 넘어가서였다. 등록을 했지만 사실 내가 10킬로미터를 뛸 수 있을거라고는 잘 상상도 안되던 때에, 상뽐회 친구들과 쓰는 챗방 채널을 하나 열어서 그 챗방 이름을 "10k_and_me"라고 짓고 그 채널에다가 달리기하고 있는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친구들의 응원을 즐기고 온갖 관련 잡담을 소소하게 나누었다. 그 소소한 잡담의 힘으로 그 채널은 그 사이에 10k_and_me에서 12k_and_me이다가 13mi_and_me를 거쳐 이번주에는 다음 목표인 26mi_and_me로 이름이 바뀌었다.
(5K를 뛰고난 직후에 쓴 글은 여기에: 5K + 10K)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지구력있게 무엇인가를 꾸준히 해서 이룬 것이 너무 신기해서, 랜선을 통해서 챗방에서 보는 친구들이 어떻게 나를 하프마라톤을 뛰게 해주었는가를 앞으로 블로그 글 몇개를 더 통해서 찬찬히 복기해보려고 한다.
랜선친구들, 카우치 포테이토를 하프마라톤에 보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