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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n Kim 김희선 Aug 03. 2019

두루마리 하나로 해보는 반년 회고 (하프이어 오딧)

올해의 반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나요? 남은 반은 어떻게 할 건가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편과 내가 연말에 퍼스널 플래닝을 장소 대관(?) 하고 2-3일에 걸쳐서 하는 너드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10년이 넘게 매년 연말연초에 그렇게 맘을 다잡고 시작해도 한 해의 반쯤이 되면 굳은 결심은 흐물흐물 하게 마련인데, 마침 편리하게도 내 생일이 7월 상반기에 있어서 나는 매년 생일 근처에 내 인생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간단한 체크라도 한번씩 각잡고 앉아서 해보고 있다. 


머리가 복잡할때나 이렇게 한번씩 물러나서 큰 그림을 보고 싶을때 내가 잘 쓰는 방법은 두루마리 메쏘드(라고 이름을 막 붙이자)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자기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자 절간에 들어가 면벽수련을 하면서 큰 종이에 인생의 크고작은 역사를 생각나는대로 다 닥치는대로 적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제품 디자인으로 학부를 다닐 때 교수님 한분이 자기는 디자인 스케치를 하면서 종이를 바꾸면 생각의 타래가 끊어지는 게 싫어서 두루마리 종이를 풀어가면서 스케치를 이어간다고 하신 게 뇌리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건 두루마리 종이를 돌돌돌 풀어가며 머릿속에 있는 걸 죄다 쏟아내는 두루마리 메쏘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큰 종이나 두루마리 종이

너무 가늘지 않은 펜이나 너무 딱딱하지 않은 연필 - 눌러서 쓰면 강조할 수 있어야 함. 여러 색 펜들도 좋음. 

여러색의 포스트잇노트

주위가 조용하고 넓은 테이블 

쫓기지 않는 시간 적어도 2kmn (하루에 그 이상은 너무 지치더라)

기분만 내는 조용한 음악

심상하게 생긴 그냥 종이, 크기만 하면 된다 


일단 종이에서 여백을 많이 남긴 어딘가 중간에다가 그날의 질문을 적는다. 내가 주로 라이프 오딧에 쓰는 질문은 “제일 중요한 게 뭔데?”인데 여기에 시간 프레임을 적거나 특별한 토픽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면 2019년 하반기에는 제일 중요한 게 뭔데?거나 회사의 지금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데? 이런 식이 된다. 


제일 중요한 게 뭔데 What Matters Most?는 스탠포드 MBA에 지원했을때 여러가지 질문으로 몇 천 단어 한계를 주면서 에세이를 쓰게하던 다른 학교들과 달리 딱 하나의 질문으로 다른 제약 하나도 없어도 모든 생각을 다 발라버리던 그 학교의 에세이 질문이었다. 물론 난 그지같이 못써서 그 학교에서 어드미션을 못 받았다만 그 뒤로도 10년이 넘도록 매번 생각한다. 나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그 중앙의 질문에서부터 가지를 뻗는다. 마인드맵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뭐가 중요하냐 물으면 난 항상 큰 가지들은 비슷하게 나오는데, 회사, 나 자신, 남편, 아이, (가끔) 친정부모님 뭐 이런 식의 큰 가지가 나오고, 거기서 그때그때 필요하거나 신경쓰이거나 노력하고 있는 토픽들이 각 큰 가지들에 붙는다. 토픽들은 또 잔가지를 치고 잔가지는 더 잔가지들을 치는데, 생각을 멈추거나 자기검열하지 않고 그냥 계속 흘러가게 두려고 한다. 두루마리 종이를 돌돌 풀어가면서 계속 휘갈겨 적고 선을 연결한다. 가끔 여기서 to-do 액션 아이템들이 나오는데 그건 포스트잇에다가 적어둔다. 칼라코드로 액션 아이템들을 종류에 따라 분류도 하는 편. 나중에 걔네는 따로 모은다. 


1kmn 정도만 해도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게 많이 쏟아져 나올텐데, 뭘 좀 먹고 머리를 쉰 다음에 한 kmn을 더 하면 이미 두루마리에 쏟아내 놓은 것에다 더 살을 붙일 수 있다. (KMN은 번역가 김명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일하는 시간의 단위이다. 자세한 것은 여기: 40+20작업법


이렇게 그야말로 생각의지도 마인드맵을 한번 그리고나면 머릿속이 조금 개운하고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간과하고 있던 것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는 수도 있고, 일단 큰 그림을 한번 줌아웃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이 좀 생긴다. 


이번 하프이어 포인트에는 이걸 두가지 각도에서 해보았는데, 하나는 내 삶 전반에 걸쳐서고 하나는 우리 회사 하나에만 국한해서 해보았다. "아이고 갈 길이 멀다."가 올해 하프이어 오딧 해보고 난 감상.   


// 원작성일 7/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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