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반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나요? 남은 반은 어떻게 할 건가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편과 내가 연말에 퍼스널 플래닝을 장소 대관(?) 하고 2-3일에 걸쳐서 하는 너드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10년이 넘게 매년 연말연초에 그렇게 맘을 다잡고 시작해도 한 해의 반쯤이 되면 굳은 결심은 흐물흐물 하게 마련인데, 마침 편리하게도 내 생일이 7월 상반기에 있어서 나는 매년 생일 근처에 내 인생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간단한 체크라도 한번씩 각잡고 앉아서 해보고 있다.
머리가 복잡할때나 이렇게 한번씩 물러나서 큰 그림을 보고 싶을때 내가 잘 쓰는 방법은 두루마리 메쏘드(라고 이름을 막 붙이자)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자기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자 절간에 들어가 면벽수련을 하면서 큰 종이에 인생의 크고작은 역사를 생각나는대로 다 닥치는대로 적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제품 디자인으로 학부를 다닐 때 교수님 한분이 자기는 디자인 스케치를 하면서 종이를 바꾸면 생각의 타래가 끊어지는 게 싫어서 두루마리 종이를 풀어가면서 스케치를 이어간다고 하신 게 뇌리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건 두루마리 종이를 돌돌돌 풀어가며 머릿속에 있는 걸 죄다 쏟아내는 두루마리 메쏘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큰 종이나 두루마리 종이
너무 가늘지 않은 펜이나 너무 딱딱하지 않은 연필 - 눌러서 쓰면 강조할 수 있어야 함. 여러 색 펜들도 좋음.
여러색의 포스트잇노트
주위가 조용하고 넓은 테이블
쫓기지 않는 시간 적어도 2kmn (하루에 그 이상은 너무 지치더라)
기분만 내는 조용한 음악
일단 종이에서 여백을 많이 남긴 어딘가 중간에다가 그날의 질문을 적는다. 내가 주로 라이프 오딧에 쓰는 질문은 “제일 중요한 게 뭔데?”인데 여기에 시간 프레임을 적거나 특별한 토픽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면 2019년 하반기에는 제일 중요한 게 뭔데?거나 회사의 지금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데? 이런 식이 된다.
제일 중요한 게 뭔데 What Matters Most?는 스탠포드 MBA에 지원했을때 여러가지 질문으로 몇 천 단어 한계를 주면서 에세이를 쓰게하던 다른 학교들과 달리 딱 하나의 질문으로 다른 제약 하나도 없어도 모든 생각을 다 발라버리던 그 학교의 에세이 질문이었다. 물론 난 그지같이 못써서 그 학교에서 어드미션을 못 받았다만 그 뒤로도 10년이 넘도록 매번 생각한다. 나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그 중앙의 질문에서부터 가지를 뻗는다. 마인드맵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뭐가 중요하냐 물으면 난 항상 큰 가지들은 비슷하게 나오는데, 회사, 나 자신, 남편, 아이, (가끔) 친정부모님 뭐 이런 식의 큰 가지가 나오고, 거기서 그때그때 필요하거나 신경쓰이거나 노력하고 있는 토픽들이 각 큰 가지들에 붙는다. 토픽들은 또 잔가지를 치고 잔가지는 더 잔가지들을 치는데, 생각을 멈추거나 자기검열하지 않고 그냥 계속 흘러가게 두려고 한다. 두루마리 종이를 돌돌 풀어가면서 계속 휘갈겨 적고 선을 연결한다. 가끔 여기서 to-do 액션 아이템들이 나오는데 그건 포스트잇에다가 적어둔다. 칼라코드로 액션 아이템들을 종류에 따라 분류도 하는 편. 나중에 걔네는 따로 모은다.
1kmn 정도만 해도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게 많이 쏟아져 나올텐데, 뭘 좀 먹고 머리를 쉰 다음에 한 kmn을 더 하면 이미 두루마리에 쏟아내 놓은 것에다 더 살을 붙일 수 있다. (KMN은 번역가 김명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일하는 시간의 단위이다. 자세한 것은 여기: 40+20작업법)
이렇게 그야말로 생각의지도 마인드맵을 한번 그리고나면 머릿속이 조금 개운하고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간과하고 있던 것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는 수도 있고, 일단 큰 그림을 한번 줌아웃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이 좀 생긴다.
이번 하프이어 포인트에는 이걸 두가지 각도에서 해보았는데, 하나는 내 삶 전반에 걸쳐서고 하나는 우리 회사 하나에만 국한해서 해보았다. "아이고 갈 길이 멀다."가 올해 하프이어 오딧 해보고 난 감상.
// 원작성일 7/15/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