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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유부녀가 된다.

결혼식까지 한 달, 헐레벌떡 준비기

by 그림자

결혼식이 앞으로 한 달도 안남았는데

본인이 식을 할 예식장에 한 번도 안 가본 신부가 몇이나 있을까?

어떻게 하다 보니 그게 바로 내가 되었다.


지난 4개월 동안,

결혼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고,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혼은 나에게는 갖고는 싶으나 두려운 양날의 검이었다.


특히 나의 결혼식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절망을 느꼈다.

나에게 2017년 가을은 분노의 계절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풀지 못하는 분노가 내 마음에 가득차 있었다.


화를 돋게 만든 지분 중 가장 크게 차지한 것이 예식장 위치였다.

봉투 때문에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의 가족과

지금까지 뿌려놓은 것이 있고 아들 결혼이라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의 가족은

결혼식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달랐다.

고성은 오가지 않았지만 신경은 오가던 팽팽한 싸움이 연일 계속되었다.


나는 몇 안되는 하객일지라도 편하게 올 수 있는 서울 지역,

그의 집과 나의 집의 중간인 강남을 주장했다.

그의 집은 자신들의 연고지인 경기도 변두리 지역을 주장했다.

이유는 아들 결혼이니까.

(그의 누나는 서울에서 했다고 한다)


나보다 먼저 간 친구들의 결혼준비 과정에서 이와 같은 경우가 왕왕 있었다.

특히 지방에서 목소리 좀 내신다는 분들(공무원이나 사업하는 경우)이

시부모님이 될 경우에 꼭 자신의 연고지에서 해야 한다는 강력한 벽이 생겼다.

자식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고

사돈집이 서울이어도 강한 주장을 펼쳤다.

이럴 경우, 나의 친구들은 배수진을 친 거래를 했다.

어떤 친구는 본인이 원하는 동네에 아파트를 사주지 않으면 타협 없다.

어떤 친구는 지방에서 식을 할 경우 파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그녀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렇다면 나는?

며칠을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엔 내가 백기를 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아프시다고 하시기에.

아랫사람의 도리,

외국에 나가 살 며느리가 해드리는 유일한 도리라 마음을 먹으며

나는 나의 뜻을 꺾었다.

그나마 내가 관철시킨 요구 사항은 드레스와 본식스냅을 예식장 패키지가 아닌

내가 원하는 업체를 고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안 그러면 정하기 위해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몇 번이고 왔다갔다 했으리라.


하지만 결정했다하여 모든 상황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인스타와 블로그에 올라오는 예식장 사진을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내가 원하던 예식장의 조건은 천장 샹들리에였는데

내가 할 그곳에는 할로겐 조명과 에어컨이 달려 있었다.

너무나 슬펐다. 며칠은 펑펑 울면서 잠들었다.

결혼식에 큰 로망은 없었지만 나도 여자이기에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게 무너졌다는 사실이,

친구들을 봤을 때 이도저도 얻지 못한 헛똑똑이가 된 사실이 더욱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나는

어떻게 가라앉히고 평온함을 되찾았을까?


'내려놓기'


예로부터 모든 번뇌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랬다.

나는 이너 피스를 되찾기 위해 결혼식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당시에 법륜스님의 유투브 영상을 얼마나 보았는지 모른다.

'스님의 주례사'란 책도 구입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히스테리가 어마어마했다.


어찌되었건 나는 해답을 찾았고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드메업체와 본식스냅을 결정하는데 각각 하루씩 걸렸다.

하루라고 해봤자 보고 마음에 들면 그걸로 끝!

내려놓으니 만사가 평온하였다.


그리고 그가 있는 외국으로 나가 함께 연말을 보내며

결혼식에 대한 부질 없음을 더욱 느꼈다.

'이렇게 같이 살면 결혼인 거지 결혼식이란 게 다 뭐람?'

그러니 결혼식에 들어갈 돈이 아까워졌다.

이또한 다른 짜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될 수 있어

어른들이 원하는 것이니 생각하지 말자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예식장 위치 포기로 내가 얻은 것이 있다.


바로 '신랑의 중심'


번뇌하는 나를 지켜보며 신랑이 완전한 내편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그의 가족과의 거리 정하기가 성사되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미래의 시댁과의 거리.

이를 위한 나, 며느리의 행동 스타일.

이는 앞으로 경험해가며 차차 적어보련다.


앞으로 한 달,

이제 '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유부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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