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결혼이란 제도에 맞는 사람일까?

- 인륜지대사를 결심하고 다시 브런치로 복귀하며.

by 그림자


매주 월요일 글을 올리기로 한 나의 목표는 폭풍 같은 연애의 결실 결혼을 결심하고 와르르 무너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7월 8월, 2달간은 브런치의 브...도 기웃거리지 못했다.

이제 계절이 바뀌는 9월이 되었으니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해보련다.

그러나!!!!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이 자꾸만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나는 결혼이란 제도에 맞는 사람일까???"


-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만 이 사람이 분명해!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인 7월 초 어느 날.

나의 연인은 이대로 날 보낼 수 없다며 왼쪽 약지 손가락에 끼울 반지를 사야 되겠다며 분주했다.

내가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지만, 그가 보기엔 매력적인 나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남자가 채가면 어쩌냐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내 손가락에 맞으면서 내가 흡족해하는 디자인을 찾으러 다녔다.

(내가 머물렀던 나라는 사이즈 주문제작이나 수선은 오래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 타기 전 끼우려면 딱 맞는 반지를 찾아야 했다!!)


나는 계속 "심플!!! 심플!!!" 외치며 조잡하지 않은, 보석이 조금 있는 반지를 찾아다녔지만,

그들의 심플과 나의 심플은 한치 차이가 아닌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차이만큼 달랐다.

그러다가 페르시안 남자들이 운영하는 보석점에서 심플한 프로미스링을 구입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한테 맞는 반지를 구할 수나 있겠어?' 하며 시큰둥하게 다녔지만 막상 내 마음에 딱 드는 반지를 보게 되자 나는 뭐에 홀린 듯 손을 내밀었다. 저 반지는 내 반지였다!

그리하여 결국에 그의 진실한 고백과 함께 내 왼쪽 손가락에는 앞으로 평생 동안 함께하자는 징표가 끼워졌다.

그와 공항에서 눈물의 세이 굿바이를 하고 비행기 안에서 반지를 보며 그를 그리워할 때는 앞으로 다가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이 존재했다.

이제 그와 평생 함께하는 거야!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결혼이란 것이 무엇인지 준비하며 조사를 해 나아가다 보니!

아뿔싸!!!! 결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양가 인사.

우리 집(한국인), 너를 외국에 아예 보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저 갔다가 다시 한국에 온다고 여겼지.

그러니 이 결혼 탐탁지 않아! 다만, 남자 친구는 괜찮은 사람인 건 인정한다.

그의 집(한국인), 이십 대부터 보통 똑순이가 아닌 아이(나)던데 아들이 기 눌려살 것 같아 걱정이다.

아들의 선택이니 반대하진 않겠지만 심히 우려된다.


그 누구 하나 마음을 활짝 열고 환대하지 않았다.

대체 왜 한국에선 부모의 '허락'이 결혼을 하는데 꼭 필요한 걸까?

서른이 넘은 자식이 장성하여 자신이 평생 함께 할 반려자를 찾았다는데 기쁘게 받아주면 안 되는 건가?!

난 가족과 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반평생 배우자와 사는 거라고!

그래서 나의 환상도 10% 정도 수그러들었다.


결혼식 방법.

나는 친지가 운영하는 고급스러운 펜션에서 스몰웨딩을 하려고 했다.

일단 친정에서 한다는 안정감과 멋들어진 분위기에서 진행하는 주례 없는 캐주얼한 결혼식을 예전부터 상상했기 때문이다.(대관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 큰 장점)

조건은 양가 직계가족과 친한 친구들만 초대하여 서른 명 미만의 진짜 스몰웨딩을 하기.

이 부분은 한국에 친구가 없는 남자 친구가 더 발 벗고 나서서 찬성했다.

그가 원하는 결혼식 또한 나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런 결혼식 괜찮다고 쿨하게 넘겼지만 그의 집은 달랐다.

"지금까지 우리가 낸...!!!" (이하 생략)


하아.....한국에서의 결혼식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다.

어쩐지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내가 스몰웨딩 타령할 때 다들 날 짠하게 바라보더니만.....

그래서 나는 그러시다면 마음껏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로 마음이 돌아서며,

환상이 20% 정도 수그러들었다.


결혼식 준비.

결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결혼 준비 사이트들을 들락날락거리며 낯선 용어들로 한동안 쩔쩔맸다.

스드메........ 뭐야 이거?

예단..... 예물...... 꾸밈비....... 어쩌고저쩌고.........

뭐 이리 허례허식이 많은지!

특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결혼 준비 리스트 엑셀 파일을 받아보고 그 목록에 기함을 했다.


우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만으로 결혼식을 준비할 예정이고,

양가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받지 않을 생각이다.

시작이 월세일지라도 둘 다 자기 앞가림은 거뜬히 해낼 능력이 있기 때문에 힘을 합쳐 살다 보면

5년 뒤 10년 뒤에는 기반 잘 잡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일단 결혼비용이 너무 비싸다!!!!!

스빼고 드메만 한다 해도 가격 차이도 별로 나지 않고 스냅에 예복에........


솔직히 우리는 어른들의 체면만 아니면 양가 식사 자리에서 성혼서약서만 외쳐도 된다.

둘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오는 한국스타일의 결혼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환상이 20%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위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치관 차이.

친척들을 다 통틀어 나의 주위는 여자의 파워가 강한 편이다.

남자보다 여자의 가방끈의 색도 알록달록하고 긴 편이다.

다들 외국물은 한 바가지씩 드링킹 하기도 했다.

그래서 명절이 칼 같다. 남자들도 일을 해야 한다. 제사 안 한다.

새언니들도 아이를 어른들께 맡기고 우리들과 커피 마시러 외출한다.

상차림은 같이 하고 설거지는 시누이들(나 포함)이 한다.

(시누이 입장에서 우리 집 불만은 새언니를 왜 명절 당일 저녁까지 붙잡아 두느냐이다.

우리들이 투덜거려봤자 애들 목소리라고 어른들은 흘려들어 모르신다. 끙.)


평소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하여 어느 정도 무관심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다들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믿음 때문인지 걱정 없다.

독립한 친동생과도 만났을 때만 엄청 살갑고 친하게 난리 부루스지 용건이 없다면 막상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카톡 하기 힘들다.

대신 서로의 꿈과 개인의 자유에 대해 존중한다.

말로써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청난 개인주의자이다.

그런데 님의 가은 엄청난 가족주의였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말로써 조언을 한다면서 실제론 간섭인 늬앙스가 많다.

그래서 그의 가이 내 SNS를 찾기 위해 구글을 항해하며 분주할 때, 남자 친구는 재빨리 내게 사과하고 SNS를 비공개로 돌려달라 요청했다.

다행히 남자 친구는 자기 가족들의 간섭을 사생활 침범이라 여기고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알아서 커트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혼 후 아무리 외국에 산다 하여도 전부를 막아주진 못할 것이다........

이로써 환상이 10% 감소했다.


성격 차이.

사랑꾼인 감성주의자인 그와 사랑도 곧 현실이 되니까 생활을 준비하자는 이성주의자인 나.

연애 초반엔 나도 사랑 뿜뿜이로 낭만적인 멘트를 곧잘 날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서는,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행사들을 해내야 한다는 잔다르크적인 전투력 때문인지 낭만 멘트가 어렵다.

그러나 그는 매일같이 하는 화상전화에서 사랑을 부르짖는다.

그의 애정공세가 너무 고맙다.

그런데 나까지 매일같이 하길 바라니 이건 정말 힘들다.


그에겐 신혼의 단꿈이 존재한다.

나는 너무 환상을 가지면 실망한다며 결혼은 생활이라고 말한다.

그는 외국에서 나를 맞이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한국에서 내가 만들어놓은 연결고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압박을 받아 더욱 현실적이 된 감도 있다.

그래서 낭만적이지 못하고,

좋고 싫음을 딱딱 구분하며,

결혼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지 않고 골머리 끙끙거리며 진행하는 나에게 섭섭하단다.

붙어있을 때는 모르다가 매일 통화를 한 시간 이상씩 하니까 대화 속에 드러나는 생각 차이, 성격 차이도 때론 나를 버겁게 만든다.

이는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로써 환상이 20% 사라졌다.




이제 나에게 결혼에 대해 남은 환상은 20%이다.

이는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지금 만나는 이 사람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지는 확신이다.

이 사람이 분명히 내 짝인 것은 맞다.

그런데 연애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들이 자꾸만 눈앞에 나타난다.

이래서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나 보다.


나의 반골기질은 아무래도 결혼이란 제도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란 단어를 붙이고 싶지만 대체적으로 자유를 위한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나와 세상을 보는 나만의 기준이 명확한 내 성정을 볼 때,

전세계 통틀어 난 결혼에 20% 정도만 맞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도 갖고 싶고,

나의 꿈도 쟁취하고 싶은 나는.

참 욕심쟁이다.


잘 해낼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