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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앞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의 꿈>

함께 걷는 그림자

by 그림자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혼자서 카페에 가는 것을 즐기는 나는, ‘단골’이라는 용어를 좋아한다. 혼자 다닐 때, 낯선 곳에서 낯선 상황을 겪게 되면 조용히 보내려고 했던 하루가 굉장히 피곤 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한 장소를 주로 방문하고 어느새 그곳의 단골이 된다. 가끔씩 단골이 된 장소의 주인들과 안면을 트고 인사를 주고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예치기 않은 방문으로 단골이 될 만한 상점을 발견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마음이 든다.


3년 전, 일 년 넘게 다니던 미용실이 있었다. 30대 후반의 남자 미용사 한분이 잡일까지 도맡아 하는 1인 미용실이었다. 실력도 좋았지만 작은 장소가 주는 편안함이 나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단골이 되어 찾아갔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머리를 하러 미용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가 알던 미용실이 아니었다. 정말 다르게 변해있었다. 간판도, 인테리어도, 주인도 모두 바뀌어있었다. 어쩐지 예약할 때 목소리가 좀 다른 것 같더니.........


새로운 미용실에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미용사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오픈 홍보도 안 했는데 예약 전화를 받고 놀랐다며 흥분해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난감해져 어쩌다 방문했다며 둘러댔다. 당시엔 머리 할 시간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라도 해야겠다며 염색과 커트를 요청했다.


내 담당은 청년 미용사였다. 너무 앳되어 보이는지라 걱정이 되었다. 청년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두피부터 머릿결 상태, 원하는 스타일을 물어가며 다듬어 갔다. 그의 손길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미용사보다 정성스러웠다. 아직 초보인가?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오히려 전의 미용사가 만들어준 스타일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머리를 하는 2시간 동안 청년 미용사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직접적인 사생활을 묻기보다 흘러가는 일상에 대한 스몰토크였다. 청년은 아직 사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미용에 대해선 확고했다.


“두상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스타일이 달라요. 그래서 항상 저는 두상을 먼저 보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제가 한 머리를 누군가가 거리에서 보고 멋있다고 해줬음 좋겠어요.”


그리고 군대에서 많은 연습을 하고 나오니까 요즘 트렌드인 투블럭의 달인이 되었다며 넌지시 자기 자랑을 하기도 했다. 나는 청년의 실력과 친절함에 다음번에도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 미용실은 나의 단골 상점이 되었다.


오픈 첫 예약 손님이었던 나인지라 미용실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미용실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젊은 남성 고객들로 나날이 번성했다. 그러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미용실 주인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던 여자 미용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실제 주인이었다. 제대하고 큰 맘먹고 돈을 빌려 차렸다고 했다. 주로 요식업에서 청년창업을 보았지만 미용으로 어린 나이에 도전한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청년은 자잘한 세금 문제부터 건강보험료 등 행정적인 업무를 매우 힘들어했다. 패기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역시 사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매장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청년의 도전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궁금해졌다.


어느덧 미용실의 단골이 된 지 일 년이 지나 2년 차가 되었다. 어느새 미용실은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적어도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리고 청년 미용사는 나름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처음에 삐걱되던 매장 운영에 대한 기우는 이제 저 멀리 날아갔고, 청년은 나름의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에게서 무언가가 바뀐 기분이 들었다.


“왜 그 고객님은 무리하게 요구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예약을 해야지 무작정 찾아와서 잘라 달라하면 피곤해요. 그럴 거면 다른 데 갔음 좋겠어요.”


고객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던 그는 연일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을 경험하고 느낀 사람에 대한 피로함과 과로로 인한 문제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순수한 열망에서 점점 안정을 찾다 보니 다른 곳을 향해 욕심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청년만의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이곳을 떠나 다른 미용실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나 또한 요구사항이 많은 귀찮은 단골일지도 모르니까.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특히 20대의 생각은 세상의 자극에 의해 시시각각 변한다. 안 변하고 갇혀있으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이 20대의 삶이다.


너무나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세상에 순수했던 청년이라 나는 그의 성장과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청년의 인생을 두고 지금의 변화가 길게 보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미용실을 시작하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는가.


청년은 현재 성공을 하고 있고, 다른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나는 청년을 통해서 성실하게 자기 확신을 갖고 일하면 일 년 사이에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신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는 굉장히 박수 쳐주고 싶은 뿌듯하고 멋진 일이다.

그런데 단단한 사업가로 발돋움을 한 청년의 변화가 애석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단골 미용실이 사라져서 느끼는 아쉬움일까?

아니면 인간관계와 일에서 오는 큰 시련과 좌절이 청년에게 곧 다가올 것 같은 불안한 예감 때문일까?


초심을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처음 청년에게서 느껴졌던 반짝이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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