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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이를 찾아 헤매는 늪>

함께 걷는 그림자

by 그림자

이십 대는 경험의 시간이라 생각했던 나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알바, 콜센터가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서 같이 일하던 상담사나 아니면 유선 상으로 마주했던 갖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면 아마도 책 한 권은 그냥 채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쉬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중에 ‘늪’이 연상되는 언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언니를 처음 봤을 때 번뜩 떠오른 단어는 ‘공작새’. 한마디로 화려함이었다. 짙은 쌍꺼풀에 우뚝 솟은 높은 코, 진한 화장이 마치 연예인 같아서 한눈에 눈길을 끌었다. 언뜻 보면 삼십 대 초반 같아 보였으나 실제 나이는 내일모레면 마흔이 다가오는 나이였다. 언니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에게 미소 지었고 누구에게나 상냥했다. 그래서 큰 걱정이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다 친해진 몇몇 언니들과 일을 마치고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다.


갖은 고객들의 불만을 접수하는 콜센터는 적성에 맞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이라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하여 나와 연배가 비슷한 젊은 친구들이 방학 알바로 팀마다 가득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일하는 팀은 연배가 유독 높았다. 편하게 모든 호칭을 언니라고 했지만 나와는 보통 기본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언니들이었다. 그래서 일과 후 술 한 잔도 마치 내가 있으면 안 될 느낌이 드는 얼큰하고 진한 자리로 만들어졌다.


그날 술자리는 근방에 거주하는 왕언니 집에서 시작되었다. 화려한 언니와 왕언니, 고참 언니, 나 이렇게 넷이서 갖은 안주를 꺼내놓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주제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고 왜 여기 오게 되었느냐’였다.


나는 당시 꿈을 쫓아가다가 용돈이 필요해 머물렀기에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언니들은 달랐다. 그녀들의 사연은 모두 묵직한 덩어리로 뭉쳐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은 흘렀지만 화려한 언니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연거푸 소주잔을 채워 목으로 넘겼다.


“네 맘 내가 안다.”


왕언니가 화려한 언니에게 말했다. 왕언니는 이미 화려한 언니의 사연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아들을 데려오고 싶은데.........”


화려한 언니에게는 열 살 아들이 있었다. 남편과는 이혼하고 아이를 자신이 키우기로 했지만 여력이 안돼서 부산 친정에다 맡겼다고 했다. 말문이 트이자 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전남편은 조폭이었다. 어릴 적부터 한눈에 띄는 외모였던지라 청소년기에 소위 얼굴 값하면서 연애했다고 한다. 그러다 싸움 좀 하는 남편을 만났고 뭘 몰랐던 어릴 때라 사랑하나 만 믿고 결혼했다. 살다 보니 자신에게는 아이가 생겼고,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 가정 폭력도 있었으니 그 결과는 이혼이었다. 당시에 자신도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친정에 맡겼는데 그게 어찌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거의 오육 년이 되었다.


“이젠 데려오려고. 안정적인 직장도 잡았고 애도 컸으니까 내가 키울 수 있어.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이젠 남자 필요 없어. 아들만 있으면 돼.”


언니는 울면서 말했다. 너무 짠했다. 언니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잔뜩 올랐는지 언니의 몸이 휘청거렸다.


어느덧 새벽 한 시. 왕언니는 자리를 정리했다. 나도 왕언니를 도와 먹던 것을 치웠다. 화려한 언니는 연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나 갈게.”


화려한 언니가 갑자기 일어났다. 왕언니는 너무 취한 화려한 언니가 걱정되어 자고 가라며 말렸다. 화려한 언니는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도 집에 가기 위해 화려한 언니와 같이 나갔다. 집 앞에는 승용차 한 대가 멈춰서있었다. 화려한 언니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탔다. 운전석에는 어떤 남자가 앉아있었다. 차는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언니가 사라진 길을 보며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술자리에서 언니가 했던 말과 너무나 다른 언니의 행동이 황당했다.


“쟨 남자 없으면 안 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왕언니가 내 표정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술자리에서 울고불고하다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면서.


“지 팔자는 지가 꼬는 거야.”


나 또한 술기운이 올랐던 지라 왕언니의 한마디에 인생이란 그런 거지 하며 낭만 취객으로 집으로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후로 며칠 동안 곰곰이 언니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말과 행동이 엉키고 설켜 언니는 자신이 만든 늪 속에 빠져있단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알바였지만 언니들은 정규직 사원이었다. 그러나 잦은 지각으로 화려한 언니는 콜센터를 그만두었다.

알바가 끝나 센터를 나왔을 때, 화려한 언니에게 정수기 렌탈 업체에서 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허나 그 또한 오래가진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아들과는 같이 살지 않았다.


한 사람을 만들어주는 가치관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삶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언니는 어린 아들이 아니라 어른인 남자가 필요한 여자였다.

나는 언니의 선택을 존중할 수 없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안타까운 건 어떻게 하여 언니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나약한 언니의 행동과 마음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나도 내 기억 속에 맴돌며 애석한 마음을 자아내는 게 아닐까.


언니와는 연락이 끊긴 지 4년이 지났다.

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자신이 만든 늪 속에서 벗어났을까?

아니면 여전히 눈물을 자아내며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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