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훈 Nov 04. 2020

늙어감에 대하여

노인복지를 하는 내 직종의 특성상 나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훨씬 더 많이 갔고 대상자에게 사랑과 애정을 보이는 보호자보다 적당히 자기의 할 일을 줄여 그 정도만을 하고 싶어 하는 보호자를 더 많이 보았다. 애정을 보이는 보호자들 중 일부는 약간 뒤틀린 애정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직업이나 대상자들을 보는 시선도 대체로 긍정적이지 않다. 좋게 봐도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정도가 가장 긍정적이고, 그들의 노화와 '늙어감'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그들처럼 되지 말아야지'를 목표로 삼는 사람도 많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르크바르크의 말처럼 유한성을 유한성으로 쪼개 점점 손에 쥔 유한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내가 손에 가득 담고 있는 물이 조금씩 줄어들어 메마르면 나의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는 걸 이 세상 누구나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삶의 유한성과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고찰할수록 우리는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과 삶의 유한성, 심신의 노화를 체감하게 된다. '시간'은 인지하려 할수록 위협이 된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고찰은 삶에 대한 불완전성과 불안감으로 인하여 생긴다. 시간이 가면 나의 삶이 일정하게 채워져 더 마음과 재력, 사회적으로 더욱 안정적이고 명확한 삶이 되고 현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불혹을 넘어 이순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생은 여전히 불안하고 완전하지 않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어른'과 '노인'의 모습이 되고 있는 자신을 보며 더욱 큰 불안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 갈 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갈 때, 대학에 갈 때, 직장을 가질 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때 늘 우리는 그랬다. 자신이 그렸던 미래상과 상이한 스스로를 보며 실망했고 두려움을 느꼈으며 나의 바람이 별거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바꿔가며 그때 내가 바라보았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를 이해하게 된다. 불완전한 삶 속 일정한 깨달음을 얻어 가며 우리는 머리와 몸에 나이를 새긴다.

그렇다. '늙어간다는 것'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잃어가며 죽음에 한발 가까이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본래 삶이라는 게 그렇다. 어릴 때도 우리는 그랬고, 물론 지금도 그렇고, 당연히 나이가 들어서도 그럴 것이다. 그러한 삶의 순리를 따라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게 늙어간다는 것이다. 늙음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늙음은 그냥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었음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개개인의 특징에 따라 다르지만 기운과 표현, 시선은 나이에 의해 분명한 변화를 보인다. 그건 바로 나이에 따라 가지고 있는 자리와 개인적, 사회적인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또는 너무 어리다고 안타깝게 보거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또는 시민으로서 아이와 젊은이와 노인 각자의 자리를 존중해 주면 된다. 불필요하게 서로를 혐오하거나 상대의 자리를 박탈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듦에 대해 너무 고찰하지 말자. 오늘날 나의 삶과 너의 삶을 존중한 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훨씬 중요하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 사랑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