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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Mar 10. 2016

영화 '목숨'과 잊어버린다는 것

2014.12.12


  '목숨'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평균 생존기간이 21일인 호스피스에서의 환자들과 그 가족, 직원들의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둘 다 본 입장에서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조금 더 담담하고 죽음에 다다르는 배우자의 심경을 위주로 담아냈다면 '목숨'은 남아 있는 사람과 환자인 당사자,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감독의 심정이 더 가득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두 영화 모두 죽음과 그보다 더 중요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도 큰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요. 물론 흥행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더 하고 있지만 목숨도 그에 못지않게 좋은 영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목숨을 본 가장 큰 이유는 첫째로 제가 암 환자였기 때문이고, 둘째로 호스피스에서 일을 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동년배들에 비하여 죽음과 더 친숙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와 관련되어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돈과 관계없이 기회가 된다면 지금 있는 데이케어센터가 아닌 호스피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글이 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이 영화에서는 총 네 명의 환자가 나옵니다. 네 명의 환자는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삶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완전히 수용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남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하는 생각은 '죽고 싶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죽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 나를 하루라도 더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에게도 치료의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겪어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환자는 "내가 더 나쁜 모습을 보이기 전에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나를 남기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바람은 "나는 너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 네가 하루라도 나와 함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더 산다는 것이 훨씬 괴로울 수 있습니다. 통증도 심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사는 의미를 찾기는 어렵죠. 그래도 가족들을 더 보고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환자만큼이나, 아니 환자보다 더 힘든 사람은 바로 환자의 가족, 즉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첫 오프닝에서 호스피스로 옮겨지는 과정을 일인칭으로 담은 컷 그리고 시작과 끝부분에 나오는 눈이 흩날리는.. 아니면 마치 위로 올라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 부분입니다. 마침 시네마톡에도 첫 번째 질문으로 누군가 물어보았었더군요. 결국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저는 이 눈이 흩날리는 장면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세상에 인사를 하고 안녕을 고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침상에서의 일인칭으로 옮겨지는 장면에서는 보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환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는 세상과의 진통으로 방황하고 있는 예비 신학생이 나옵니다. 그 신학생이 감독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는데 중간에 아주 인상적이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비록 호스피스 안에서만 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모두 착하고 좋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모두 바깥에서 오신 분들이니, 밖이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은 곳인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의미를 담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요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좋은 곳입니다. 곧 호스피스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두침침하고 무서운 곳은 아닙니다. 그저 그곳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다만 평범한 사람들보다 하루가 더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일 년을 하루에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힘든 시간을 보낼지언정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몰랐던 것들을 깨달아 더 기뻐하기도 합니다.


  또 영화에서의 독특한 점은 바로 임종 장면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영화에서의 임종을 실제로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는 TV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짧게 '행복한 삶을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정도의 말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는 환자들의 죽음을 오롯이 보여줍니다.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논란이 되지는 않더군요.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 저는 임종 장면이 들어가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임종을 그대로 그려내고 환자의 위에 카메라를 달아 위에서 촬영을 한 것도 환자가 하늘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실제로 감독님도 시네마톡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환자와 환자의 가족, 그 주변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 전달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영화를 찍으시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그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임종 장면을 찍으면서 "내가 이걸 찍을 자격이 있는가" "환자가 죽음에 처하는데 나는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환자의 모습들을 내가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과연 가족들은 이를 좋아할 것인지" 등의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셔서 편집실에서 영화를 마치고 극장에서 '목숨'을 보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괴롭다고 하셨어요.


  이와 관련돼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사실 시네마톡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질문 시간이 짧아서 말을 못했었습니다. 과연 감독님이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환자였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제 모습을 이렇게 그려주시면 굉장히 고마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분노에 있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가족들도 그와 관련된 심정의 변화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그 모습들이 담겨 있음으로 당시의 마음과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바로 '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를 위해서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방향으로 연출을 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해드리고 싶었어요, 너무 고민하지 마시길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중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주변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따뜻하고 긍정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디에서나 인간은 살고 있고 내가 사는 이곳이나 저 사람이 사는 저곳은 비슷하며 이 세상은 생각보다 좋은 곳입니다. 이 이야기는 곧 죽음이 먼 사람과 죽음이 가까운 사람에게도 세상은 모두 같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누가 먼저 그것을 깨닫느냐의 차이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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