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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pr 10. 2016

어떤 딸

2015.03.21


"그러면 20일 10시쯤 센터에 오시는 걸로 할게요."


  센터를 이용하시고 싶어 하시는 어르신의 내방 상담을 시작했다. 원래 어르신을 모시는 자부님께서는 오지 않으시고 근처에 살고 계신다는 따님께서 어르신과 함께 센터에 방문하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센터에 관한 소개와 서비스 안내를 해드리고 어르신의 질환이나 행동 증상, 생활사에 대한 이야기를 여쭈어보았다. 어르신께서는 알츠하이머로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의 끈은 분명하게 붙잡고 계시는 분이셨다.


  어르신과 함께 오신 따님께서는 서초구청 사회복지과에서 근무를 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들이랑 같이 사는데 아들이랑 며느리랑 그 집 딸들까지 아무도 엄마를 사람 취급을 안 해요." 초기상담을 하는 내내 며느리에 대한 험담이 이어졌다. 반찬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거나, 말을 아무도 걸지 않는다거나 병원에는 항상 자신이 모시고 가고 전에 계시던 데이케어센터에는 며느리가 가지 않아 항상 자신이 방문을 했다는 등등의 말들이 나의 질문과 상관없이 상담실을 떠다녔다.


  나는 어르신의 케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어르신의 행동 증상이나 질환, 투약 여부, 그 외 일상생활 수행능력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하지만 따님께서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셨고 나의 질문을 받아넘기며 뭉뚱그렸다. 그리고 엄마가 가지고 계시는 재산을 자신이 관리하고 있고, 엄마와 관련된 일을 자신이 처리하고 있다며 며느리의 행동과 그로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수습한 일들에 대한 선전이 이어졌다.


  어르신의 인지 기능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인지기능검사를 진행하던 도중 따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우리 엄마가 가끔 2,3일 정도 정신이 맑을 때가 있어요, 혹시 그럴 때 유서를 작성하게 하면 법적 효력이 있을까요?" 상담이 끝나고 어르신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그 말들은 여전히 상담실을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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