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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pr 12. 2016

보고 싶은 것만 보지

2015.04.27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다고 해보자,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10가지 이야기 중 내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섯 가지,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섯 개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아마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기억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뇌리에서 지워버리던가 긍정적인 이야기들로 덮어버릴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얘가 나에게 이러이러한 행동을 했다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라고 물어볼 것이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걔도 너에게 관심이 있나 봐"라고 대답을 하게 되겠지, 이제 그러고 이야기를 했을 때 까이면 찬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한테 이런 행동을 해놓고 나를 까다니! 이건 어장이다 나쁜 년!" 이렇게, 정말 악의를 가지고 이성을 휘두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보통 사람이지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하면 이제 그 사람이 어떠한 행동과 말을 해도 잘못되었다고 보인다. 그 사람을 더 싫어할 수 있는 근거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더 관찰하게 된다. 분명히 그 의도가 아닌 말을 해도 잘못된 의도로 이해하고 실제로 그렇게 스스로 믿어버린다.


  이 이후부터는 이제 자기가 잘못 이해한 사실을 주변에 퍼뜨리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려들 것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시선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본다면, 이제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자신의 의견에 근거를 댈 수 있는 증인이 한 명 더 생기는 것이니,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할 수 있는 절적한 정당성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정도까지 되면 이제 그때부터는 그 사람을 싫어하기 위해 싫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어도 주변에 의하여 이상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건 자신이다. 그런 식으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을 미워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결국 황폐화되는 건 상대방을 싫어하는 바로 당신이다.


  그 사람의 안 좋은 점을 보기 위해 열심히 관찰하는 게 본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리 만무하다. 당신이 싫어하는 그 사람은 당신이 싫어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나온다. 실제로 그렇게 상황이 이루어졌다기보다 내가 그렇게 해석을 했다는 이야기가 맞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신승리라지만 그건 자신이 황폐화되지 않는 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생과 정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세뇌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조금 더 객관적인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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