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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pr 21. 2016

일 재미있어요?

2015.05.17


  어제는 몇 년 만에 좋아하는 대학 동아리 후배를 만났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자연스럽게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에도 썼지만 나는 29살 2월에 졸업을 하고 그 해 4월에 취업을 해서 지금 4년 차로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한지는 3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동안 이직을 하지는 않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은 아시다시피 사회복지사


  내가 일하는 치매 어르신들께서 다니시는 장기요양기관은 사회복지사들에게 비선호 직장으로 분류된다. 왜냐면 종합복지관이 급여수준도 더 좋고, 종합복지관에서 함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나이대와 비슷한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크다. 장기요양기관은 거의 다 아주머니들과 일을 하니까 그런 저에도 선호도가 떨어진다.


  나만 해도 전 직원 32명 중 젊은 남자는 나 하나뿐이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 직원도 한 명 밖에 없다. 그 외 관리인 선생님 1명, 그리고 전부 주부님들과 수녀님들이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 기관 내 사회복지사가 1명 아니면 2명이다 보니 실질적으로 혼자서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분업 같은 건 아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상자들도 다 치매 어르신들이니 대상자에서도 선호도가 떨어진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치매 노인은 사회복지사들 안에서도 매력적인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이를 다시 설명해보면 비선호 직장이라는 의미는 곧 재미와 흥미가 떨어지는 직장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기는 당연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년이 넘도록 여기서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보면,


  첫째로 나는 원래 큰 변화를 바라며 사는 타입이 아니다. 익숙함과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둘째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 자체가 급여가 정말 확 크게 뜨는 일이 없다.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있고, 나에게 큰 메리트가 없는 이상 옮길 필요가 없다.


  셋째로는 어느 직장에 가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기는 불만으로 직장이나 환경을 옮겨도 다른 문제나 불만이 생길 것이다.


  넷째로 노인 쪽, 특히 요양 시설이나 데이케어센터 쪽은 나름대로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람은 누구나 늙기 마련이니 노인분야는 정책이 수립되는데 훨씬 유리하다. 노인들은 다들 투표를 하니까.


  다섯째로 특히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사같이 자격증이 남발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은 한 우물을 파면서 경력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승부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바로 "이쪽 분야에서의 경력" 과 "평판 "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은 이 두 가지를 쌓기에 유리하다.


  여섯째로 혼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꽤나 좋기 때문이다. 사수나 팀 없이 혼자서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내가 알아서 일을 조절할 수 있고 내가 잘하기만 하면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내가 일을 놓쳤을 때의 리스크는 그만큼 크다.


  일곱째로 말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계시는 대상자인 어르신들에게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상자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마다 대상자가 바뀌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대상자가 내 손이 닿는 소수의 인원이어야 했다. 여기 계시는 어르신들에게는 내가 필요했고, 내가 다른 사회복지사들보다 더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나의 일은 당연히 재미가 없다. 관계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많고 아주머니들을 다루기도 어렵고 당연한 일을 하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직장 내에 같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떠한 일이 생겨도 나를 통해서 일이 진행되어야 하고 작든 크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며 나의 역량이 센터의 평가로 직결되는 부분이 크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일에 나름대로 보람을 많이 느낀다. 일단 위에 적은 일곱 번째 이유가 크고, 어쨌든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항상 진심으로 대상자와 보호자를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박봉도 아니니까 내 생활을 아무 문제없이 잘 유지할 수 있고, 거의 매일 칼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그를 통해서 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들이 보람과 만족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누군가는 일을 하면서 일 자체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적은 비울이라고 생각한다. 


  일에서까지 재미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일이 아니라도 재미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재미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면 어떠한 일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히 재미가 없는 것이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게 일이라는 존재다. 


  일을 할 때 재미 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이 일에 보람을 느끼는가, 이 일을 하면서 나의 현실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가, 이 일이 나의 가치관과 맞는가,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점이 싫은 점 보다 많이 있는가, 위와 같은 것들을 충족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일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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